[쿠키뉴스=이혜리 기자] “이제는 저도 재벌 캐릭터 맡고 싶어요. 그 흔한 부자 캐릭터를 단 한번도 못했죠. 생각해보니 부모님 두 분이 있었던 적도 없었네요.”
20대 대표 남자배우로 거듭난 이종석(26)의 귀여운 투정이다. 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한 지 5년 만에 드라마 ‘흥행 보증 수표’로 거듭났다. 거침없는 성장세를 이어왔다.
대표작을 보면 그의 쉼 없는 질주를 단번에 알 수 있다. SBS ‘시크릿 가든’,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KBS ‘학교 2013’, SBS ‘닥터 이방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 그야말로 거침이 없다.
충분한 휴식기 없이 또 선택한 작품은 ‘피노키오’였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조수원 PD·박혜련 작가와 다시 손을 잡고 변신에 성공했다. 연기에 물이 올랐다. 언론의 희생양이었지만 복수를 위해 기자가 돼 진실을 파헤치는 최달포를 완벽하게 그려냈다는 평이 이어졌다.
걱정 없고 철부지일 것만 같은 외모 뒤에는 고민과 걱정도 많았다. 최근 들어서야 자신의 작품을 볼 때 괴로워하면서 보지 않는다고 했다. ‘피노키오’를 위해서는 연기 선생님을 찾아가 신인 배우들과 함께 트레이닝을 받았을 정도다. 그는 스스로를 연기 빼고는 ‘젬병’이라고 말한다. 작품에 집중하다 보면 아파트 관리비까지 몇 달치 밀린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피노키오’를 마치고 난 뒤 헛헛함이 먼저 밀려왔다고.
“끝나고 집에서 이틀 동안 누워있었어요. 뭔가 모르게 허전했죠. (박)신혜도 끝날 무렵부터 기분이 이상하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래도 착한 드라마로 끝난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배우로서 이종석은 늘 취재를 당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극중 방송기자로 변신해 기자라는 직업을 간접 경험했다. 실제로 SBS 보도국에 가서 리포트를 작성 하는 법과 아나운서 교육을 받았다. “특히 리포트하는 부분에서 걱정되는 게 많았다. 진짜 같아야 하는 거니까. 뉴스와 다큐멘터리도 많이 봤다”며 그간의 노력을 설명했다.
“기자를 간접 경험해보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진실 규명을 위해 전투적으로 싸우고 화법자체도 많이 다르잖아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많이 다뤄지지 않은 직업군이기도하구요. 기자에 대한 데이터가 많이 부족했어요. 간접적으로나마 텔레비전을 통해 다른 작업군을 이해하는 편이죠. 그래도 의사나 변호사는 작품에서도 많이 그려지고, 어깨 너머로 듣고 해서 어느 정도의 감은 있었는데 기자는 전혀 없었죠.”
기자라는 직업이 연기로 표현하는데 쉽지는 않았을 터다. 그래도 믿고 연기할 수 있었던 건 박 작가에 대한 ‘무한 신뢰’였다.
“작가님이 재작년 시상식부터 보도국에서 취재하고 있었어요.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고 저는 대본에 잘 따라간 거죠. 디테일한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써주셨어요. 대본에는 각주가 다 달려있고, 상황에 따른 의상, 감정표현들을 자세하게 적어놓으시죠. 생활감 있는 대본이 저로 하여금 공감을 만들어냈고, 연기로도 이어질 수 있었죠.”
보통 한 주연급 배우가 1년에 두 작품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종석은 지난해에만 두 작품을 연달아했다. 평소 ‘드라마 광’으로도 소문난 그이지만 왜 유독 드라마에 이렇게 열정을 보였던 걸까.
“연기 하는 게 마냥 좋았어요. 또 잘 하고 싶은 욕심도 컸구요. ‘닥터 이방인’이 끝날 때쯤엔 선배들이 이야기해준 그 시기 때의 슬럼프도 겪었죠. 심신이 많이 지쳤다고 해야 할까요. 당시 휴식기를 가질까 생각하다가 조 PD님과 박 작가님의 연락이 왔어요. 이분들과 함께라면 다시 시작해야겠다 싶었죠. ‘피노키오’를 통해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인터뷰 도중 이종석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생각해보니까 제가 맡은 역할들 중에 부모님 두 분 다 있었던 캐릭터가 없다”며 “하이킥 말고는 다 사연이 있는 캐릭터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웃고는 있지만 가슴 한 켠에 슬픔을 간직한 캐릭터들이었죠. 이런 역할들이 더 재밌기도 하고 익숙하죠. 그래도 저도 재벌 캐릭터 해보고 싶어요. 늘 똑같은 옷만 입는 캐릭터 말구요.(웃음)”
맡아 온 캐릭터들과 달리 이종석은 충분히 사랑받으면서 힘든 일 없이 자라왔다고 말했다.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그에게도 외로움은 존재했다.
“혼자 나와 살다보니 외로움을 많이 타게 됐어요. 외로움이 발전해서 우울함이 돼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죠. 지난해부터는 감수성이 풍부해져서 드라마 보면서 울기도 해요. 주인공이 우는 장면만 봐도 눈물이 나와요. 그래서 연기도 쉬지 않고 하려고 하죠. 작품 속 인물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잖아요. 현실의 나는 그렇지 않아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도 많이 들죠. 작품 속에 있는 게 의미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다작하는 이유도 있어요.”
‘피노키오’ 속 사회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최달포도 이종석이 말하는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달포를 연기하면서 이종석이 느낀 감정은 어땠을까.
“최달포가 현실에서의 나라면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공익을 위한 질문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도 이기적이고 치졸하게 나를 위한 질문을 했을 것 같아요. 또 거대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려는 기자가 정말 실제로 많을까라는 궁금증도 생겼어요. 신념이나 진정성,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시작을 했던 기자도 현실적으로 몇 년이 지나면 도태되고 그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앳된 외모의 이종석이지만 어느덧 2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섰다. TV 드라마를 보면서 중학교 때부터 꿈꾼 배우라는 직업은 현실이 됐고, 대표 배우가 됐다. 어린 시절 동경하던 지금의 30대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니 말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커서 그런가? 연애도 드라마 속에 그려지는 것처럼 예쁜 결혼도 빨리 하고 싶었어요. 가상의 세계에 미친 사람처럼 꿈을 꾸는 거죠. 중학교 때 비 선배님이 나오는 ‘풀하우스’를 보면서 배우의 꿈을 가졌어요. ‘늑대의 유혹’ 강동원 선배님도요. 지금의 30대 배우 분들을 보면서 동경했죠.”
이종석은 이때까지 ‘상남자’ 역할은 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보여주고 싶은 캐릭터는 ‘개와 늑대의 시간’ ‘남자 이야기’ 등 액션 느와르 장르나 거친 남성미가 가득한 역할이다. 예쁘장하고 동안 외모를 가진 그에게 ‘상남자’ 역할이 어울릴지는 의문이 든다. 이종석도 자신의 외모가 30대가 됐을 땐 어떨지 궁금해 했다.
“20대가 끝나 가는 거요? 아쉽지는 않아요. 어떻게 변할지는 궁금하죠. 제가 잘생기고 예뻐서 이렇게 사랑받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맘때 딱 예쁜 얼굴이라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나이 먹어서 주름지고, 중후해지는 건 상상이 안가요. 특히 저처럼 선이 여성스러운 배우는 더 그렇죠. 젊을 때 빨리 많은 작품을 소화하고 싶은 생각은 많이 해요.”
데뷔 후 단 한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는 이종석은 ‘워커 홀릭’으로도 유명하다. 앞으로의 그에겐 휴식기간도 조금은 필요해보였다.
“배우 이종석이 아닌 나를 위한 능력은 아무것도 없어요. ‘깡통’이에요. 작품 끝나면 더 허무하죠. 취미생활도 없고, 만날 친구도 몇 명 없어요.(웃음) 드라마 끝나고 나서는 가스비가 밀려서 끊길 위기까지 갔었어요. 작품 할 때면 관리비도 못 낼 정도로 집중하거든요. 지금 영화 시나리오 보고 있는 게 있는데 올해는 영화를 한편 하려고요. 마음잡고 쉬어볼까도 생각해요.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면서 말이죠.”
이혜리 기자 hy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