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우리 팀은 사실 ‘팀컬러’가 없어요”
지난해 10월 31일 밤 잠실야구장 인터뷰룸. 넥센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2대12로 패해 시리즈 전적 1승3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LG트윈스 양상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듣기에 따라 파격적일 수도 있는 한마디였다.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팀이 팀컬러가 없다니. 그것도 감독의 자평이었다.
이어 양 감독은 “그래도 불펜진을 강하게 만든 걸 팀컬러라고 할 수 있지만 넥센 같은 가공할 공격력이나 예전 두산, SK처럼 빠르다던가 하는 것이 없다”며 “공격 부분에서 어떻게든 확실한 팀컬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느린 선수를 갑자기 빠르게 만들 순 없고, 흐름(을 타야하는) 분위기에서는 일단 한 점을 꼭 내는 부분을 더 강하게 주문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진정한 강팀이 되기 위해선 공격적인 부분에서 확실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게 양 감독의 ‘팀컬러론’이고, 하지만 그런 것이 없는 게 시즌 도중 지휘봉을 잡은 양 감독의 눈에 비친 LG였다. 그리고 그나마 있는 팀컬러를 말하라면 불펜진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즉, LG가 채워야 하는 마지막 퍼즐은 점수를 내야할 땐 꼭 낼 줄 아는 집중력, 수비나 마운드가 아닌 공격에 있다는 것이다.
2015 시즌에 팬들이 기대한 모습은 양 감독이 이때 말한 그대로였다. 외국인 원투펀치에 우규민, 류제국으로 대표되는 안정감 있는 선발진과 리그 최강을 자부하는 불펜진에 공격 부분의 새로운 팀컬러가 배가된 ‘완전체’ LG였던 것이다. 시즌을 앞두고 양 감독이 “선수들에게 주자 3루시에 100% 득점을 목표로 해달라고 했다”고 한 것도 플레이오프가 끝난 후 말한 것과 일치한다.
그러나 올 시즌 LG는 양 감독의 구상과는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다. 1일 경기 전까지 득점권 타율 0.200이다. 여기에 지난해까지 2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를 자랑한 불펜진은 나왔다 하면 상대 주자들을 불러들이거나 추가 실점을 하고 있다. 개막전부터 이날 경기 전까지 유원상, 신재웅, 정찬헌 등이 모두 그랬다. KIA와의 2차전 1점 앞선(6대5) 상태로 맞은 9회말에 봉중근이 나오자마자 볼넷, 홈런을 허용해 경기를 내준 장면은 LG팬들에겐 아예 ‘충격’이었다.
이날도 0대1로 뒤진 5회초 1사 1,3루 위기에서 임정우에 이어 나온 신재웅은 짐 아두치에게 1스트라이크 3볼까지 몰려 불리함을 자초한 후 적시타를 얻어 맞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물론 점수를 안 주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강한 불펜이라면 5회 밖에 안 됐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1점을 주더라도 내야 땅볼이나 희생 플라이로 아웃카운트를 늘렸어야 했다. 마운드를 이어 받은 김선규가 잘 막았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1사 1,3루 위기가 이어져 자칫하면 여기서 무너질 수가 있었다.
여기에 3회말 2사 만루 찬스에서 이병규(9번)는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고, 2대2로 따라잡은 후 1사 만루의 역전 찬스를 잡은 6회말엔 김용의가 투수 앞 땅볼 병살타로 흐름을 끊어버렸다. 이어 다시 앞서나갈 기회였던 7회말 2사 1,2루 찬스에서 이병규(9번)는 또다시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어 8회말 2사 1, 2루에서는 대타 양석환이 유격수 앞 땅볼로 물러났다. 3이닝 연속 득점권 기회 무산.
신재웅 다음으로 나온 김선규부터 이어진 계투진의 활약과 10회말 터진 김용의의 끝내기 안타로 천신만고 끝에 이기긴 했지만 답답한 건 이전 3경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감독이 강조했던 새로 생겨나야 할 팀컬러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그나마 있다고 한 팀컬러는 약해지는 모양새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LG는 이대로 가면 운이 따라주거나 유독 잘 되는 날이 아니라면 이기기가 힘든 팀이다. 팀컬러가 ‘전혀 없는’ 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