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우리 동네에 성범죄자가 산다

[기획] 우리 동네에 성범죄자가 산다

기사승인 2015-04-04 13:19:55

# 서울 은평구에서 다섯 살 난 딸을 키우고 있는 주부 이모(32)씨는 몇 개월 전 우편물을 하나 받았다. 여성가족부에서 보낸 ‘성범죄자 우편 고지정보서’였다. 당시 이씨는 성범죄자가 근처에 산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동시에 딸을 보호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난감했다. 그는 “지금도 불안한 마음에 항상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 된다”며 “하지만 아기를 혼자 밖에 못 나가게 하는 것 말고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이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또 이사한다 해도 다른 곳에 이런 사람들이 안 산다는 보장도 없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쿠키뉴스=민수미 기자] 성범죄자 고지 정보서, 보내기만 하면 끝?

성범죄자 우편고지제도는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재범률을 줄이기 위해 2011년 1월부터 시행됐다. 이는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로 법원에서 고지 명령을 선고받은 자가 거주하는 읍면동 지역의 주민에게 고지대상자의 신상정보를 고지하는 제도로 아동·청소년을 세대원으로 둔 세대에 제공된다. 성범죄자의 사진, 이름, 나이, 키, 몸무게 주소 및 성범죄 요지(판결 일자, 죄명, 선고형량) 등이 기재되어 있다.

성범죄자에 관한 경각심을 목적으로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도다. 그러나 문제는 후속조치다. 취재 기간 만난 고지 정보서를 받은 부모들은 범죄예방을 위한 방안이 따로 마련되지 않아 속을 태우고 있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학부형 정모(30)씨는 “우편고지제도로 알려주는 것까지야 좋지만 사실상 정보를 알기 전과 후,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회사에 다니는 워킹맘이기 때문에 불안감은 나날이 늘어만 간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성범죄자가 생기거나 전입해 온다면 이에 맞춰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새롭게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부모들의 이 같은 걱정에는 이유가 있다. 이른바 ‘솜방망이 처벌’로 급속히 늘고 있는 성범죄와 높은 재범률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여성가족부는 2013년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신상정보 등록 대상자 수가 2709명으로 전년(1675명)보다 61.7%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체 신상정보 등록 대상자의 43.2%가 집행유예를 받았으며 36.2%가 징역형, 18.7%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성폭력범죄의 44%가 범죄자 거주 지역에서 발생했고 가해자나 피해자의 집(33.2%)이 가장 많았다.

또 2012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김도읍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보호관찰 대상인 성폭력 사범의 재범률이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5년 새 일반 범죄자의 전체 재범률 증가 폭보다 5배 가까이 높았다.

성범죄자 얼굴 확인하기, 이렇게 까다롭나

성범죄자들의 재범에 대응할 방안이 없다면 이들의 얼굴이라도 정확히 파악하는 적극적인 방어가 필요하다.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이 없는 가정이거나 인터넷을 통해 성범죄자를 알아보고 싶다면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성범죄자 알림e’를 이용하면 된다.

그러나 이를 보기 위해서는 통합설치 프로그램, 웹구간 암호화, 키보드 보안, 화면캡처방지, 워터마크 등을 다운받아 설치해야 하며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동의로 공인인증서, I-PIN 인증, 휴대전화 인증, 주민등록번호 인증 중 하나를 설정해 실명 인증 절차를 걸쳐야 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성범죄자 알림e’ 앱 또한 본인 인증을 해야 한다. 이런 복잡한 과정에 이용자들이 크게 불편을 겪고 있으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성범죄자 알림e’를 이용한 한 네티즌은 “사이트가 접속 폭주도 잦고 보기도 복잡하다”며 “법원에서 공개하는 범죄자들의 신상을 보는데 왜 내 실명 인증을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네티즌 역시 “‘성범죄자 알림e’에 들어갈 때마다 내 정보보다 범죄자들의 신상을 더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어리고 약한 미성년자들이 꼭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왜 성인인증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글을 올렸다.

어렵게 확인한 범죄자들의 신상마저도 잘못된 정보들이 공개돼 ‘성범죄자 알림e’에 대한 신뢰성에 구멍이 생기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 의원이 공개한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0월 기준 성범죄로 인한 신상정보등록 대상사건은 1만1183건이다. 이 가운데 보호관찰명령을 함께 선고받은 성범죄자 1068명의 법무부 성범죄자 등록정보원부상 주소와 실제 거주지를 비교해보니 145명의 거주지 변경이 지연 처리됐고 실제와 다른 주소가 등록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직장 변경이나 출국 이후에도 성범죄자 알림e에 옛 주소가 등록되어 있기도 했다. min@kmib.co.kr
김현섭 기자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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