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성완종(64·사진) 전 경남기업 회장이 끝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22분쯤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에서 300여m 떨어진 지점에서 성 전 회장이 목을 매고 숨져 있는 것을 경찰 수색견이 발견했다.
성 전 회장은 자원외교 비리 의혹과 관련해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였으며, 9일엔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돼 있었다.
성 전 회장은 ‘영화 같은 인생’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코스를 밟듯 자연스럽게 올라간 기업 회장들이 들끓는 한국 사회에서 웬만한 드라마보다 극적인 그의 인생 여정은 대중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전쟁 통에 충남 서산에서도 태어난 성 전 회장은 초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냉대와 구박 속에 세 동생을 건사할 수 있는 길은 빨리 돈을 버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에 외삼촌이 준 10원짜리 지폐 몇장을 들고 친어머니를 찾아 무작정 상경한 것이다.
서울로 올라온 성 전 회장은 낮엔 약국 심부름을 하고 밤에는 교회 부설학교에서 공부하는 억척스런 ‘주경야독’의 삶을 살았고, 청년으로 성장한 7년 뒤 고향에 내려와 화물중개업으로 사업에 첫 발을 내딛었다. 당시 그의 손에 들려있는 ‘사업 자금’은 단돈 1000원이었다.
성 전 회장은 끈질기게 노력한 끝에 1977년 우연히 건설업계에 뛰어들게 됐고, 연매출 2조 원을 넘나드는 경남기업을 일궈내기에 이르렀다.
어린 시절 잠 잘 곳이 없어 남의 집 헛간을 전전하고, 신문을 배달하며 휴지를 모아 팔기도 한 그는 국민주택 규모의 집 한 채씩만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장학재단을 만들어 200억원 이상의 기금으로 7000여 명에게 장학급을 지급했다.
그에 따르면 “어려웠던 시절에 받았던 도움을 사회에 되돌려 주라”는 어머니의 유훈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 전 회장은 자서전 ‘새벽빛’에 이런 굴곡진 인생사를 담았다.
성 전 회장은 2006∼2013년 5월 회사 재무상태를 속여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지원되는 정부융자금과 금융권 대출 800억여원을 받아내고 관계사들과의 거래대금 조작 등을 통해 250억원가량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횡령)를 받아 왔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은 8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까지 흘려가며 혐의를 부인했다. 특히 그는 “나는 MB(이명박 전 대통령)맨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성 전 회장이 9일 새벽 집을 나서기 전 남긴 유서에는 억울하다는 취지의 내용과 함께 “어머니 묘소 옆에 묻어달라”는 부탁이 있었다고 한다.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