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 심리학] 성완종, 그의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무엇이었을까

[이슈 인 심리학] 성완종, 그의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무엇이었을까

기사승인 2015-04-10 09:39:55

9일 유서를 쓰고 잠적한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이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9일 오후 3시 32분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에서 등산로를 따라 300m 떨어진 지점을 기준으로 산속으로 30m 더 들어간 곳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경찰 수색견이 발견했다.

심리학 용어 중에 타나토스(Thanatos)라는 것이 있다.

이 용어는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1920년에 쓴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쾌락 원칙을 넘어서)’에서 처음 제안한 개념이다. 이 ‘타나토스’의 뜻은 ‘죽음의 본능’이다. 이와 반대로 제안된 개념은 삶의 본능으로 ‘에로스(eros)’였다. 삶의 본능(에로스=eros)은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신적 에너지를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힘은 바로 이 삶의 본능인 정신적 에너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반대로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는 파괴의 본능이다. 생명을 가진 사람이 생명이 없는 무생물로 돌아가려는 본능을 말한다.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혹은 타인을 파괴하려고 하는 본능이 바로 ‘타나토스’인 것이다.

성 전 회장의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인생은 여느 다른 기업들의 회장들의 출생과는 다른 출발로 알려져 있다. 전쟁 통에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냉대와 구박 속에 세 동생을 건사할 수 있는 길로서 ‘돈’ 버는 것을 선택했다. 외삼촌이 준 10원짜리 지폐 몇 장을 들고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로 올라온 성 전 회장은 낮엔 약국 심부름을 하고 밤에는 교회 부설학교에서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삶을 살았다. 끈질기게 노력한 끝에 1977년 건설업계에 뛰어들어 연매출 2조 원이 넘는 경남기업을 일궈냈다. 그는 국민주택 규모의 집 한 채씩만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장학재단을 만들어 200억 원 이상을 7000여 명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어린 시절 잠 잘 곳이 없어 남의 집 헛간을 전전하고, 신문을 배달하며 휴지를 모아 팔았던 그는 어려움을 알기에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 이에 대해 성 전 회장은 “어려웠던 시절에 받았던 도움을 사회에 되돌려 주라”는 어머니의 유훈을 실천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성 전 회장의 삶의 본능은 바로 ‘돈’이었다. 스스로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통해 돈이 얼마나 삶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에 ‘돈’의 성공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유훈처럼 ‘돈’으로 자신처럼 어렵게 공부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단단히 했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진정한 자신과는 달리 다른 사람에게 투사된 성격을 뜻하는 용어인 ‘페르소나(persona = 가면)’라는 것이 있다.

성 전 회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정치권에 깊숙이 발을 담그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자신도 모르게 ‘정치적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2003년 충청권 정당인 자민련 총재특보단장을 맡았고,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지원했었다.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당선 된 후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자문위원 역할을 맡아서 ‘MB맨’이라는 꼬리표를 달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선진통일당 소속으로 19대 국회의원을 충남 서산태안 지역구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공직선거법에 걸려 ‘정치적 가면’을 벗게 되었다.

이렇게 ‘정치적 가면(페르소나)’을 쓴 그는 2006 ~ 2013년 5월 회사 재무 상태를 속여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지원되는 정부육자금과 금융권 대출 800억여원을 받아내고 관계사들과의 거래대금 조작 등을 통해 250억원 가량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횡령)를 받아왔다. 성 전 회장은 8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까지 흘려가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나는 MB(이명박 전 대통령)맨이 아니다”

성 전 회장이 9일 새벽 집을 나서기 전 남긴 유서에는 “어머니 묘소 옆에 묻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 맞지 않은 정치적 페르소나를 벗고 어머님의 곁에 돌아가고 싶었던 그의 모습이 마음 아프다. 그가 삶의 본능에서 죽음의 본능으로 왜 기울어졌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충동적 우울이었을 것이다. 성 전 회장이 ‘혐의 없고 결백하다’고 말했던 것의 진위를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진실을 꼭 밝혀드리겠다”며 여러 차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던 그가 자살을 택한 것은 분명 ‘심리적 독감(psychological flu)’이라 불리는 충동적 우울증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

우울증은 자기 스스로의 자아가 사라지고 분노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분노가 자기를 향하면 우울증 ‘현상’이 일어난다. 이 때 자신도 모르게 자아가 사라진 것에 대에 분노를 표하게 되는데 이런 상실분노로 인해 ‘자살’이라는 결과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울은 영어로 ‘멜랑콜리(melancholy)’라고 한다. 여기서 멜랑(melan)은 그리스어로 검은색을 말한다. 우울해지면 ‘자아’의 색깔이 검어져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도 같이 흐려진다.

사람은 ‘자아’가 변화할수록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이 흐려진다. 하지만 ‘죽음 본능(타나토스)’의 손을 잡을 만큼 눈을 감아버려서는 안된다. 어두워진 자아는 닦을 기회라도 있지만 산산조각 난 자아는 누구도 닦아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재연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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