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는 이미경 의원의 관련 추궁에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억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 이 국무총리는 “(성 전 회장을 만난) 그날이 특별한 날이고 마침 말씀드린 대로 여러 명의 취재진과 지지자들이 오신 첫날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16일 CBS 보도에 따르면 이 총리를 2013년 3월부터 6월까지 약 4개월을 수행한 운전기사 A씨는 “그 해 4월 4일 이 국무총리와 성 전 회장이 충남 부여 선거사무실에서 만나 독대를 했었다”고 밝혔다.
이태임과 예원의 대화에서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는 남자들의 대화에서 ‘X같냐?’라는 것과 어감이 비슷한 것처럼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이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라는 것은 “조사 해볼 테면 해봐라!”와 비슷하다.
청문회에 나온 정치인들과 경제인들 그리고 범죄자들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기억이 안 난다”, “기억이 없다”라고 회피하는 이유는 뭘까?
심리학에서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는 용어가 있다.
이 말은 1894년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쓴 논문 ‘The Neuro-Psychoses of Defence(방어의 신경정신학)’에서 처음 사용됐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도 ‘안 했다’고 그 상황을 거부하는 것은 외적인 상황이 감당하기 어려워서 일단 그 상활을 벗어나고자 하는 무의식적 심리과정이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를 보면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안했다‘고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상황을 그럴 듯하게 또 다른 거짓말과 변명을 만들어 합리화 시킨다. 이것은 스스로의 ‘자아’가 상처받지 않으려는 심리적 과정이다. 특히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죄책감이나 자아가 손상되는 것을 벗어나려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에서 나타나는 무의식적 반응이다.
자아의 종류는 3가지가 있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자아인 ‘원초아(Id)’, 본능을 누르고 현실적인 방법에 맞추는 자아(Ego), 사회적 가치에 따라 내면화된 도덕, 윤리에 맞추는 초자아(Super-ego)가 그것들이다.
이렇게 3가지 자아들의 대화를 현실에 적용해 보면 이렇다.
원초아(Id)가 이렇게 말한다. “그냥 만났다고 해버려? 니들은 한 푼도 안받고 여기까지 왔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들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그러자 초자아(Super-ego)가 원초아를 억압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왜이래~, 그건 옳지 않아. 여기는 국회야! 최소한 품위는 지켜야지.”
중간에 지켜보고 있던 자아(Ego)가 현실적인 절충안을 이렇게 내놓는다. “모른다고 하자! 기억 안 난다고 하자! 어차피 현실적으로 증거도 없고 증인은 죽었잖아. 국무총리로서 남으려면 기억 안 난다고 하자!”
자아는 늘 노심초사 한다. 원초아가 욱하는 성격이 있어서 그대로 말해 버릴까봐 걱정한다. 이런 불안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는 전략을 방어기제라고 한다.
성 전 회장이 남겨놓고 간 현실이 이 국무총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무의식적으로 “기억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 분명 부정(Denial)하는 것과 단순히 거짓말하는 것은 과정이 다르다.
국민들에게 “정치인들이 진심을 담아 말 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기억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끝까지 조사해서 진실과 진심을 이야기 할 때까지 밝혀주면 좋겠다”는 심리인 것을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이재연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