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의 최종 수신자가 시리아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 (IS) 점령지역에 있다는 보도가 나와 범인의 ‘IS 연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 경찰은 미국 공장 테러 용의자 야신 살리(35)가 고용주인 에르베 코르나라(54)를 목 졸라 살해하고 참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살리는 참수된 머리와 휴대전화 셀카를 찍어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해 캐나다의 한 전화번호로 전송했다고 현지 일간지 르피가로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메시지는 북미지역 전화번호로 보내졌다. AP통신은 최종 수신자가 시리아 내 IS 점령 지역에 있다고 전했다.
경찰조사 결과 살리는 26일 프랑스 리옹시에서 30km 떨어진 이제르도 생 캉탱 팔라비에의 미국계 가스회사 에어 프로덕츠(Air Products)에 밴을 몰고 들어가 창고를 들이받았다.
살리는 아세톤 등 위험한 가스로 가득 찬 창고를 폭파시켜 가스공장 전체를 폭파하려 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창고 안에서 아세톤 병을 열려던 살리를 제압했다.
그가 몰던 밴 옆에서는 참수된 코르나라의 시신과 흉기가 발견됐다.
시신의 머리는 아랍어로 이슬람교도의 신앙고백을 쓴 2개의 이슬람 깃발에 둘러싸인 채 인근 담에 걸려 있었다.
아직 어떤 조직도 이번 테러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지만, 시신의 머리를 참수하고 모두가 보도록 걸어놓은 것은 IS가 수감자들을 참수해 걸어놓는 것을 흉내 낸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테러를 감행한 날짜도 IS가 라마단을 맞아 공격을 권고한 날짜와 일치한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프랑스 첫 참수 테러범으로 기록된 살리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다.
부인과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둔 가장인 그는 리옹 근처에 살고 있다. 그는 운송업체 트럭 운전사로 테러를 저지른 공장에도 배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사건 뒤 그의 집을 뒤져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압수했으나 무기나 이슬람 극단주의와 관련된 자료 등을 찾지는 못했다. 살리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연계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특정 극단주의 조직과 명백한 연계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자녀와 길거리에서 축구를 하던 ‘평범한 가장’이었던 살리가 어떻게 참수 테러범으로 변했는지 실마리를 찾으려고 주변 인물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살리의 아내, 누이를 비롯한 다른 관련 인물 몇 명을 연행해 조사했지만 모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살리의 아내는 “TV에서 테러라고 하기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놀라워했다. 같은 동네 이웃도 “그는 잘 눈에 띄지 않았으며 이웃들과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살리가 극단주의에 빠져든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그가 리옹 부근으로 이사 오기 전 살았던 동부 브장송의 이웃은 “그는 어디에 가는지 얘기도 하지 않고 2∼3개월씩 장기간 사라지기도 했다”고 말했다고 현지 라디오 RTL은 전했다.
그리고 살리는 브장송에서 이슬람 기구를 창설하려고 했으며 군복을 입은 이들과 함께 집에서 모임을 열기도 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경찰은 살리를 극단주의자로 분류해 2006년부터 2년간 감시하다 중단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알 카에다 전사들과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혐의자와 접촉해 감시대상에 올랐다.
당시 살리는 ‘위대한 알리’로 알려진 극단주의 성향의 이맘(이슬람 성직자)이 이끄는 리옹시의 모스크에 나가면서 과격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살리는 프랑스가 이슬람 급진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파병했던 말리 문제를 젊은이들과 토론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턱수염을 기르고 체중이 크게 주는 등 외모에도 변화를 보였다.
이 때문에 브장송의 한 이웃 주민은 그가 극단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난해 신고했으나 경찰은 감시에 나서지 않았다.
아울러 한 직장동료도 살리를 ‘양가죽을 쓴 늑대’라고 표현하며 그가 자신에게 IS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고 말했다.
살리는 경찰 조사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테러 발생 지역 주민 수백 명은 희생자인 코르나라를 기리고 폭력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은 운송회사를 운영하던 코르나라가 지난 3월 살리를 고용했다며 코르나라가 선량하고 겸손하며, 지역사회 일에 적극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코르나라의 윗집에 살던 레일라 부리는 “코르나라는 프랑스인과 이슬람교도를 차별하지 않았고, 인근 청년들이 문제가 생기면 찾아갈 정도로 신뢰할만한 사람이었다”면서 “나는 이슬람교도지만, 이런 식의 죽음은 어떤 방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afero@kmib.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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