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친박(친박근혜)'으로 분류됐던 그는 이제 '비박(비박근혜)'을 넘어 완연한 '반박(반박근혜)' 색채의 대열로 넘어가는 지경에 처했다.
비자발적 중도하차, 사실상의 축출로 타격은 입었지만, 정치적 입지는 오히려 확고해졌다는 서로 엇갈리는 평가가 교차하고 있다.
유 원내대표로선 '이제부터 시작', '2보 전진을 위한 전술적 후퇴'라는 얘기도 나온다.
◇떠밀려 나가면서 '배신" 꼬리표'까지 = 유 원내대표는 자신이 '주군'으로 모시던 박 대통령, '얼라(어린이의 경상도 사투리)'로 불렀던 청와대 참모들과의 갈등이 표면화하면서 결국 여당 원내사령탑에서 물러나게 됐다.
논란의 과정에서 당내 일각에선 야당에 번번이 양보한 '무능한 협상가', 고난을 겪지 않은 '온실 속 화초'라는 비판들이 나왔고, 특히 친박계로부턴 당·청 갈등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유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확인된 의원들의 뜻에 따른다는 형식을 취해 사퇴함으로써 청와대와 친박계 압력에 굴복해 스스로 자리를 내던지는 모양새는 피했지만, 이 같은 갈등 구도와 비난 공세에 사실상 떠밀려 나가게 됐다.
과정과 모양새가 어떻든 원내대표직 사퇴는 그의 정치 인생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됐다.
더욱이 여당의 원내대표가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힌 채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은 헌정사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보기 드문 장면이다.
유 원내대표의 정치적 재기가 쉽지 않다는 관측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향후 당 운영에서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입김이 거세질 경우 유 원내대표는 '배제 1순위'가 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기반인 대구 경북(TK) 출신인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에 맞서다 낙마한 만큼 향후 TK 여론이 어떻게 형성될지도 미지수이다.
내년 총선의 공천마저 장담할 수 없다는 전망도 있다. "배신의 정치를 선거에서 심판해달라"는 박 대통령의 지난달 25일 국무회의 발언이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큰 정치' 기반"…당권·대권주자 반열 올라 = 유 원내대표가 이번 사태로 큰 상처를 입은 것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정치적으로 유·무형의 많은 '보상'을 얻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 대통령 및 청와대와 대립각을 형성했던 유 원내대표는 사퇴 과정에서도 당내 최대 실력자인 김무성 대표 및 서청원 최고위원와 달리 소신을 내세우며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 존재감이 더 부각됐다.
역설적이게도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의 '개인 행로'를 열어준 셈이다.
더욱이 유 원내대표는 이번 파문을 계기로 자신의 정치철학을 국민에게 적극 알릴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
그의 정치철학이 박 대통령의 통치철학 및 국정운영과 마찰을 빚으면서 '낙마'를 불러온 화근이 되기도 했지만 '증세 및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논란' 등을 계기로 유 원내대표는 '안보적 보수·경제적 개혁주의자'로서의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주장하며 박 대통령의 비판감이 커지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진 지난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내용으로 '혁신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됐다는 분석도 있다.
더욱이 집권 후반기를 앞둔 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인색해질수록 향후 이에 '저항했던' 유 원내대표에 대한 평가는 반사이익을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여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차기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선 여당 지지층의 저변 확대가 절실하다는 점에서 '혁신 보수'의 정치철학으로 '무장된' 유 원내대표의 정치적 효용가치는 훨씬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배경에서 그가 차기 당권이나 대권의 유력 주자 반열에까지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유 원내대표가 더 '큰 정치'를 하기 위한 기반을 닦았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유 원내대표가 소수 친박계의 '당 장악'을 우려하는 비박계 내부의
잠재적인 구심점으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박계 의원들은 친박계의 축출 시도 과정에 유 원내대표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논란 와중에 유 원내대표에 우호적인 여론조사결과들도 나왔다. 각종 조사에서 그의 사퇴 반대 응답이 많았고, '정치인 유승민'에 대한 지지도도 높아졌다.
특히 사퇴 과정에 드러난 그의 '소신 언행'과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라는 동정론은 향후 정치적으로 도약하는데 큰 밑천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유 원내대표는 향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만큼 당분간 '잠행'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날 입장 발표 이후 한동안 '칩거' 또는 '침묵'하며 '2보 전진'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