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양이나 음주 시간, 체중 등의 변수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단순 계산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유·무죄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음주운전 사망 사고를 낸 뒤 19일 만에 자수한 '크림빵 뺑소니범' 허모(37)씨의 경우 사고 당시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가려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허씨가 경찰에서 사고 당시 음주 상태였음을 자백했고, 그와 동석했던 동료들도 사고 직전 그가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재판부가 음주운전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재판부는 뺑소니 혐의로 구속 기소된 허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지만 검찰이 기소한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죄를 처벌하려면 범죄 행위에 대한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사실 허씨에 대해 음주운전 혐의가 적용된 것은 다름 아닌 허씨의 자백에서 비롯됐다.
지난 1월 10일 새벽 강씨를 치어 숨지게 한 허씨는 뺑소니를 친 것은 물론 망가진 차량 부위를 몰래 수리하는 등 범행을 은폐했다가 수사망이 좁혀오자 19일 뒤인 같은 달 29일 밤 경찰에 출두, 자수했다.
허씨는 자수 직후 경찰에서 사고 당시 소주 4병을 마셨다고 진술했다.
사고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내세워 정상 참작을 받으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허씨의 진술을 토대로 뺑소니에 음주운전 혐의를 추가했다.
허씨의 자백과 사고 직전 그와 술을 마신 동료들의 증언만 있을 뿐 사고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를 확인할 길이 없었던 검찰은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 혈중 알코올 농도를 0.26%로 추정했다.
그러나 혈중 알코올 농도 0.26% 상태로는 깨어 있기조차 불가능해 이론적으로나 가능한 수치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되자 검찰은 허씨의 체중 등을 고려했다며 0.162%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조정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재판부는 결국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허씨가 술을 마신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지만, 당시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확인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위드마크 공식에 의한 추정만으로는 유죄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회사 동료 2명과 소주 6병을 나눠 마셨다는 검찰의 공소장 내용대로라면 허씨의 음주량이 720㎖가량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사고를 낼 때까지 3시간의 공백이 있었다는 진술이 있어 혈중 알코올 농도는 더 떨어졌을 것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당시 허씨의 혈중 알코올농도가 (검찰 공소장처럼) 0.162%가량 된다는 점을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위드마크 공식에만 의존하면 극단적으로 당시 허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처벌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0.035%로 추정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피고인의 자백 등에만 의존해 적용된 위드마크 계산법의 공신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그러나 허씨 스스로 적지 않은 술을 마셨다고 자백한 만큼 재판부로서도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 완전한 면죄부를 줄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사고 당시의 주취 정도를 알 수는 없지만 상당한 양의 술을 마신 후 자동차를 운전했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명확한 증거가 없어 음주운전 혐의는 인정하지 못하지만 한 가정을 풍비박산 낸 허씨의 뺑소니가 음주운전에서 비롯됐음을 분명히 하고, 그에 대한 죗값도 형량에 반영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검찰은 "술을 마셨다는 피고인과 회사 동료들의 진술이 있는데도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한 혈중 알코올농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항소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