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영향력이 센 소설'로 꼽히는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의 주역이 속편에서 '변절'했다고 알려지면서 많은 독자가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화제의 작품은 오는 1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발간될 예정인 하퍼 리(89)의 소설 '파수꾼'(Go Set a Watchman)이다.
파수꾼은 앵무새 죽이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20여년 뒤 모습을 그린 속편 격 작품이다.
전작에서 6살 말괄량이이던 진 루이스 핀치(별명 스카우트)는 1950년대에 뉴욕에서 고향 앨라배마로 돌아온 20대 진보적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이 위협당하면서도 흑인 인권을 위해 투쟁한 스카우트의 아버지이자 정의로운 백인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는 72세 노인으로 나온다.
문제는 앵무새 죽이기를 통해 미국인 마음속에 정의로운 남성상으로 자리 잡은 핀치 변호사가 파수꾼에서 인종주의자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가 미리 입수한 원고에 따르면 핀치는 백인우월주의 단체 쿠클럭스클랜(KKK)의 회합에 다니고 인종차별 제도의 폐지를 반대한다.
핀치는 소설에서 "깜둥이가 차떼기로 우리 학교, 우리 교회, 우리 극장에 오면 좋겠느냐"고 스카우트에게 따져 묻는다.
파수꾼은 아마존닷컴에서 2007년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이후 최다 주문예약을 기록할 정도로 독자들의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기대가 그렇게 큰 만큼 언론을 통해 보도된 핀치 변호사의 '변절'은 벌써 적지 않은 절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 그런 반응이 즉각적으로 확인된다.
독자 앤드루 헤들리는 "핀치가 인종주의자로 변신한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ET'의 속편에서 ET가 (주인공 소년) 엘리엇의 얼굴에 주먹질하고 용돈을 빼앗아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쉐리라는 독자는 "8학년(한국 중2) 때부터 상상 속의 남편으로 삼아온 사람이 인종주의자가 되면서 내 유년기도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앵무새 죽이기의 핀치 변호사를 마음속에 그대로 품고 살고자 파수꾼을 차마 읽을 수 없다는 독자들도 눈에 띄었다.
은둔하는 하퍼 리와 최근 함께 시간을 보낸 영화감독 메리 머피는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라는 견해를 CNN방송을 통해 밝혔다.
머피는 "파수꾼은 백인과 흑인을 같은 학교에 들이지 않던 그 시절 그 환경에서 저술된 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시절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진짜 진보적 백인 남성은 볼 수 없을 것"이라며 "파수꾼의 애티커스는 그 시절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파수꾼이 1960년에 출간된 앵무새 죽이기의 초고나 습작 정도로 1950년대에 탈고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시간 배경을 1950년대에서 30년대로 앞당기고 어린이 스카우트의 시각으로 소설을 다시 써보라는 출판사 지시에 따라 앵무새 죽이기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실제 사건을 토대로 저술된 앵무새 죽이기는 반세기가 넘도록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리는 이 소설로 1961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듬해 개봉돼 오스카상을 석권한 같은 이름의 영화에서는 그레고리 펙이 핀치 변호사를 연기해 불멸의 이미지를 새겨놓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 뒤로 미국인들 중에 아이 이름을 애티커스로 짓는 이들과 애티커스처럼 활동하려고 로스쿨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