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 메르스에…왜 50대 ‘평범한 사장님’은 ‘강도’가 됐나

세월호에 메르스에…왜 50대 ‘평범한 사장님’은 ‘강도’가 됐나

기사승인 2015-07-14 00:21:55
[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일요일이었던 지난 5일 오후 9시쯤 서울 강남구 소재 한 유명 백화점의 지하주차장.

쇼핑을 마치고 귀가하기 위해 A씨(60·여)가 벤츠 승용차에 타고 시동을 거는 순간, 한 50대 남성이 갑자기 나타나 조수석으로 따라 들어왔다.

이 남성은 A씨에게 공업용 커터칼을 들이대면서 “빨리 출발하라”고 위협했다. A씨는 출발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돈 그냥 다 가져가라”면서 이 남성과 승강이를 벌였다.

하지만 이 강도는 어딘가 모르게 어설펐다. 힘없이 칼을 떨어뜨린 그는 A씨가 차 밖으로 나가 비명을 지르자 달아났다.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이 CCTV를 뒤져 범행 5일 만인 10일 오후 경기도 문산의 한 식당에 딸린 컨테이너 집에서 용의자 이모(52)씨를 잡았다.

확인 결과 이씨는 전과도 없는, 고등학생 자녀를 둔 너무나 평범한 가장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사연을 알게 된 형사들은 오히려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씨는 원래 경기도에서 학교에 건축 자재를 납품하는 업체의 어엿한 ‘사장님’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학교 공사가 급감하면서 사업이 기울었고, 결국 부도를 맞았다.

재기를 위해 노력해 온 그는 이번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문에 예정된 공사가 줄줄이 취소되는 악재를 맞았고, 결국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할 정도로 쪼들리게 됐다.

설상가상 모친은 암 투병 중이고 형은 백혈병을 앓아 형에게 골수를 이식하려고 수술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씨가 검거된 컨테이너 집도 지인이 마련해 준 임시거처였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원래 범행을 작정하고 강남에 간 것은 아니라고 했다.

“딱 500만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부자가 많이 산다는 서울 강남에 가서 사정하면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도와주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범행 전날 무작정 지하철을 잡아타고 3호선 신사역에서 내린 이씨는 강남 거리를 하염없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거리에 외제차가 너무 많아 놀라던 차에 여성 혼자 운전하는 외제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범행을 결심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하룻밤을 길에서 보낸 이씨는 5일 백화점 폐점 시간이 돼서야 범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전날부터 밥을 제대로 못 먹은 그는 체력적으로 지쳐 있었다. A씨와 몸싸움 과정에서 힘없이 커터 칼을 떨어뜨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처음부터 범행을 생각하지 않았고 커터 칼도 백화점 화단에서 주운 것이라고 진술했지만 애초에 강도질을 하려고 강남에 왔을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씨 가족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씨가 갑자기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워진 것은 사실로 보인다. CCTV를 봐도 이씨가 범행 후 걸어서 도주할 때 매우 힘겨워 보였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검거된 날도 아침 빼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고 경찰서에 와서야 형사들이 시켜준 볶음밥을 허겁지겁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고 한다.

‘강남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기대했던 이씨를 도와준 이는 정작 한 택시기사였다.

범행 후 지하철 문산역에서 내려 한참을 걷다 지친 이씨가 택시를 잡아 “지금 가진 것이 500원밖에 없는데 나중에 돈을 보내주겠다”고 사정하자 기사가 컨테이너 집까지 태워줬다는 것이다.

이씨는 11일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됐다. afero@kmib.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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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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