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성남중원경찰서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경기도 K대학교 교수 장모(52)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장씨의 사주를 받고 폭력에 가담한 장씨의 제자 A씨(24)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하고, B씨(26·여)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 사건의 충격은 엄청났다.
장씨 등은 2013년부터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자 C씨(29)를 야구방망이 등으로 폭행하고, 손발을 묶고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운 채 호신용 스프레이를 얼굴에 쏘아 화상을 입혔고, 인분을 모아 10여 차례에 걸쳐 강제로 먹게 했다.
‘인분교수’의 ‘인면수심’ 행각은 갑의 심리와 자기기만의 심리로 파악된다.
그러나 20대의 혈기왕성한 나이의 피해자 C씨가 왜 그렇게 당하고만 있었는지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심경을 전하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가 이 지경이 되도록 왜 아무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심리학 용어 중에 ‘대조원리(contrast principle)’라는 용어가 있다. 이 대조원리는 사람들이 어떤 대상과 대인을 인식하는 심리적 원리를 말한다.
예를 들면, 시험에서 80점을 받은 학생 주변에 90점을 받은 학생이 있다면 비교되는 심리 때문에 80점이 낮게 느껴지는 원리다. 사실 100점 만점에 80점이라는 건 결코 낮은 점수가 아님에도 말이다.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후 차가운 물에 들어가면 더 차갑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피해자 C씨의 경우 자신은 대학생이고 장씨는 교수라는 ‘대조원리’를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학회의 대표로 있는 장씨와 이 학회 사무국에 취업이 된 자신의 차이를 더 강하게 인식하게 됐을 것이다. 또 장씨가 과거 제자를 지방 모 대학에 교수로 채용하는데 도움을 준 것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도움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인식하면서 장씨의 말과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도록 스스로 대조 효과에 빠지게 된 것이다.
‘상호성의 원칙(reciprocity)’라는 것도 있다.
1971년에 심리학자 데니스 레건(Dennis Regan)은 ‘미술 감상(art appreciation)’ 실험을 실시했다. 이 실험은 미술 감상이 목적이 아니라 상호성 원칙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특이한 점은 레건의 조수가 실험에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참가했다.
A실험에서 조수는 2분 정도 휴식 시간에 실험 참가자들에게 줄 음료수를 가지고 와서 참가자에게 건냈다. B실험도 같은 실험이었지만 음료수를 건네지 않았다. 즉, A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작은 호의’를 베풀었고 B실험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실험이 다 끝난 후에 조수는 참가자들에게 ‘부탁’을 한다. 자신이 지금 복권을 판매하고 있는데 복권을 구매해 달라고 했다. 이 때 호의를 경험한 A실험 참가자들은 B실험의 참가자들보다 더 많이 복권을 구매하게 됐다. 그 이유는 바로 실험에 참가한 조수에게 ‘신세’를 졌다는 심리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먼저 작은 호의를 받으면 사람은 상호성 원칙에 빠져서 ‘신세를 갚아야한다’는 심리에 빠지게 된다.
이 사건에서 C씨는 장씨로부터 취업의 기회를 받았다고 생각했고,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급 30만원도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상호성의 원칙에 빠지면 절대 ‘거절’을 하지 못하는 심리 상태가 된다.
C씨는 장씨의 가혹행위가 이어지고, 처음엔 100만원이던 월급이 점점 줄어서 30만원이 되고, 이것도 최근엔 받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대조원리’와 ‘상호성의 원리’에 빠지게 돼 ‘거절하지 못하는 세뇌 당한’ 피해자가 돼버린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심리적 중독’이다.
술이 싫고 마시면 힘든 것도 알지만 손에 이미 술을 들고 마시고 있거나, 담배를 피우면 힘들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도 알지만 이미 손가락에 끼우고 입으로 가져가고 있는 것, 이러한 현상을 알콜중독, 흡연중독이라고 하는 건 누구나 안다. 그리고 이 ‘심리적 중독’도 알콜중독과 흡연중독처럼 사람을 빠져들게 한다.
구타와 가혹행위 등으로 망가진 피해자의 몸도 걱정되지만 낮아진 자존감과 우울감이 더욱 걱정된다. ‘신뢰 받아야’ 할 대상으로부터 ‘지뢰 밟은 듯’ 모든 것을 잃은 피해자가 하루 빨리 심리적 중독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갈 힘을 기르길 바란다.
‘노예’ 같은 삶에서 벗어나 ‘No(노)! Yes(예)!’를 명확히 구분해서 거절도 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상태를 가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재연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