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째 일본과 한국으로 오가며 소란을 피웠던 롯데 경영권 분쟁은 3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귀국, 그에 이은 신격호·동빈 부자 회동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정작 후계 분쟁의 당사자인 신동주·동빈 형제도 마주 앉지도 못했다.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한일 롯데 동시 경영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장남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 역시 '독식'을 허용할 수 없다는 태도여서 형제는 결국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에 탑승한 신세가 됐다.
◇ 롯데홀딩스 주총·소송 예정…분쟁 장기화할 듯
분쟁은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이 작년 말 롯데홀딩스 부회장에서 낙마한데서 시작됐다. 일부 사업 실패를 이유로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이 단행한 조치였다.
이를 놓칠세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법적으로 한일 롯데를 동시 경영할 작업을 진행해왔고, 한일 롯데 지배의 정점인 롯데홀딩스 이사진 교체로 사실상 '원톱 체제'를 이뤘다.
그러자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달 27일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을 등에 업고 '손가락 지시'로 롯데홀딩스 임원진의 교체를 시도했다. 그러나 신동빈 회장이 28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이를 뒤집고 신 총괄회장을 대표 이사에서 밀어내 명예회장으로 추대하는 조처를 단행했다.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에 신동주 전 부회장 이외에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 등 친족 5명이 동행함으로써 판세는 '신동빈 대 반(反) 신동빈' 구도로 짜여졌다.
이어 28일과 29일 귀국한 신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 등은 잇따라 한일 언론매체에 나와 신동빈에 대한 해임지시서 공개는 물론 음성과 영상을 통한 신동빈 불인정 메시지를 냈으나, 3일 귀국한 신동빈 회장은 "법적인 효력이 없다"며 이를 무시했다.
이제 한일 롯데의 지주회사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이 분수령이다.
롯데홀딩스는 정관에 없는데도 28일 긴급 이사회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일선 퇴진시켰던 만큼, 정관 변경을 위한 주총을 열어야 한다. 이는 신동주·동빈 형제 모두 공감하고 있다. 여기에 신동주 전 부회장은 현 이사진 교체를 위한 주총도 열자고 요구하고 있다.
두 가지 주총에 신동주·동빈 형제의 사활이 달렸다. 주총에서 명예회장직 신설 안건이 부결되면 신동빈 회장으로선 매우 불리하다. 그 선택은 신 회장을 불신하는 의미여서다. 자칫 차후 이사진 교체를 위한 주총 패배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주총에서 명예회장직 신설 찬성 결정이 나오면 신동주 전 부회장의 입지가 좁아진다. 역시 임원진 교체 안건으로 주총이 열려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양쪽 모두 주총에서 패배해도 그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소송을 낼 수 있다. 롯데 후계 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점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신동빈, '마이웨이' 선언…"법대로, 성과로 말하겠다"
신동빈 회장은 단호하다. 그동안 차근차근 한일 동시경영 체제를 갖춰온 만큼 이제 내부 다지기로 기선을 잡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신 회장은 3일 귀국해 외국 출장 후 부친을 먼저 찾았다. 비록 부친과 갈등을 겪고 있더라도 자식 된 도리를 다한다는 제스처로 보였다.
부친 면담 직후 신 회장은 롯데그룹이 야심차게 추진중인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을 방문해 한일 롯데그룹의 회장으로서 경영권 분쟁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잠실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에 가서 107층까지 직접 올라가 공사 현황도 보고받고, 롯데그룹의 핵심사업인 제2롯데월드 면세점도 챙겼다.
신 회장의 이런 행동은 후계분쟁으로 시끄럽더라도 개의치 않고 경영에만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신 회장의 속내는 복잡한 듯하다.
최근 며칠 동안 일본에 체류한데서도 나타나 듯 롯데홀딩스 주총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사회를 장악했으나, 최대 주주인 광윤사(光潤社)와 우리사주의 지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총이 열린다면 정관에 명예회장 추대조항 신설은 물론 임원진 교체 안건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신동빈 회장 측은 이사회가 주총 개최 결정 권한을 가진 점을 활용해 가장 유리한 시기에 주총을 개최하려는 심산이다.
이와 더불어 신동빈 회장의 경영능력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94살 노령의 신격호 총괄회장의 판단력 부재를 노출시킴으로서 광윤사와 우리사주의 지지를 확보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연합뉴스에 "아직 주총 시점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고, 신동빈 회장도 귀국 기자회견에서 주총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신동주, 이제 남은 건 주총·소송
작년 말 낙마한 이후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려 온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은 이제 남은 카드가 별로 없다.
일본 롯데의 모든 직위에서 밀려난 위기에서 가족과 친척을 설득해 일본 롯데 부회장에 복귀할 수 있는 지지를 얻은 듯했으나, 성과는 별로 없다.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이 신동빈 회장에 대한 해임지시서를 내고 음성과 영상을 통해 불인정한다는 메시지를 냈는데도 법적인 효력이 없다고 맞서는 상황에서 법적인 다툼 이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어 보인다.
신 전 부회장은 부친은 물론 가족과 친척의 지지는 물론 롯데홀딩스 주총 승리를 위해 핵심 지배고리인 광윤사와 우리사주를 지지도 확보해야 한다.
지난달 27일 롯데홀딩스 경영권 확보 시도가 무산된 후 29일 귀국해 집안 내부의 여론결집에 힘써 사실상 '반(反) 신동빈' 세력 형성을 도모해왔던 신 전 부회장은 주총에 대비한 3일 일본행을 연기했다. '작전 변경'이 있어 보인다.
신 전 부회장으로서도 경영권 분쟁 승패의 관건은 롯데홀딩스 주총이다.
그 역시 광윤사와 우리사주의 '표심'이 가장 중요하다.
표심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 상태와 의지에 크게 영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일본행 연기는 '부친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친을 곁에서 지키면서 '반 신동빈' 분위기를 유지하고, 신 총괄회장의 '분명한' 의지를 외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신 전 부회장은 대신 아내 조윤주씨를 일본에 보내 광윤사와 우리사주 관계자들을 접촉하는 한편, 시어머니인 시게미쓰 하쓰코(重光初子) 여사를 만나 지지를 호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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