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녀, 칼의 기억’ 과거를 잊지 못하는 검객, 과거를 잊지 못하는 관객

‘협녀, 칼의 기억’ 과거를 잊지 못하는 검객, 과거를 잊지 못하는 관객

기사승인 2015-08-08 09:00:55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의 제목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건 협녀도, 칼도 아닌 ‘기억’이다. 영화에는 차(茶)와 벽란도, 세 자루의 칼, 여성 검객, 맹인 검객 등 무협영화 특유의 화려한 요소들이 등장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동력은 주인공 세 명의 기억, 즉 과거에서 나온다. 유백과 월소, 그리고 홍이는 각자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와 비교하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운다. 그들은 과거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현재가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칼을 휘두르고 맞부딪힌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액션 장면들은 공허하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무신이 정권을 잡은 고려 후기, 풍천(배수빈)과 덕기(이병헌), 설랑(전도연)은 ‘풍진삼협’으로 불리며 민란을 주도했던 검객이었다. 그러나 덕기의 배신으로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고 서로 선다. 18년 후 덕기는 고려 최고의 권력가 유백이 됐고 설랑은 과거를 숨긴 채 벽란도에서 다원을 운영하는 월소로 살아간다. 풍천의 딸 홍이(김고은)와 월소, 유백까지 세 개의 칼이 부딪히며 세 사람의 숙명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협녀, 칼의 기억’은 과거의 사연과 비밀들을 손에 쥐고 하나씩 꺼낸다. 과거의 사연이 인물들의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전개된다. 결국 인물들 각자가 지닌 사정과 고민을 이해시켜 입체적인 캐릭터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한다. 다채로운 이야기와 놀랄 만큼 수려한 영상미, 그리고 액션 장면까지 어우러져 영화는 중반부까지 걸작의 향기를 풍기며 흘러간다.

과거에 치우친 탓일까. 영화는 인물들의 현재 행동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유백이 마음을 바꾼 이유, 월소가 18년 간 지켜온 고집을 꺾는 이유, 결말에서 홍이의 선택은 관객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후반부에 이르러 존재감을 잃어버린 호위무사 율(이준호)과 홍이는 유백과 월소의 관계에 끼어들지 못하고 들러리로 전락한다. 영화는 인물들 내면의 감정 변화와 사랑, 운명 같은 요소로 그들의 변화와 선택을 설명하려하지만 개연성이 떨어져 아쉬움을 자아낸다.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유백은 힘과 권력, 미래를 결정짓는 선택권을 모두 손에 쥔 강한 인물이다. 과거에 얽매여 한 가지 길밖에 갈 수 없는 월소와 홍이에 비해 현실적인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는 유백의 캐릭터는 시원스럽고 매력적이다. 그가 권력가를 꿈꾸게 된 사연은 진정성을 더한다. 그러나 유백이 그동안 간직해온 지고지순한 사랑을 드러내자 관객석 곳곳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유백을 연기하는 이병헌은 아직 ‘50억 협박녀 사건’의 이미지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병헌이 사건 이후 한국 영화를 찍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협녀, 칼의 기억’에는 악인도, 인물의 성장도 없다. 과거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고민과 선택이 있을 뿐이다. 신선한 장르와 전개 방식과 함께 여태껏 볼 수 없었던 뛰어난 영상미, 그리고 시원하고 아름다운 액션, 기대를 만족시켜주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영화를 봐야할 이유는 많다. 그러나 영화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는 13일 개봉. 15세 관람가. bluebell@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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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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