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현섭 기자] “떠올리기만 해도 괴로운데 기사까지 인터넷에 떠 있으니 너무 괴로워요. 부탁드립니다. 삭제해주시면 안 될까요?”
며칠 전 본보로 한 강력사건의 피해자(사망) 가족이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모든 언론사가 쓰는 사건 ‘판결문’ 기사였죠. 이런 전화가 종종 옵니다. 보도 준칙 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기사이기 때문에 이럴 때마다 해당 기자는 ‘알 권리’라는 공공의 가치와 ‘피해자 가족의 상처’라는 도의적 배려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이 문제는 기사 삭제가 용이한 언론의 ‘디지털 퍼스트’ 시대에 언론계 내에서 직면한 논란거리이기도 합니다. 최근 다녀온 한 언론중재 관련 세미나 자리에서도 이런 비슷한 상황에 대해 ‘과연 언론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두고 참석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오고가기도 했죠.
다른 언론사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본보는 대부분 없애줍니다. 누가 봐도 내용의 전달 자체가 가지는 독자의 ‘알 권리’가 더 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기사가 아무 잘못도 없는 피해자 가족들의 괴로움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보고 부탁을 들어주는 게 ‘우선순위’에 있는 ‘가치’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가치의 우선순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수도권 소재 한 대학교 축제 현장에서 연출된 어이없는 장면 때문입니다.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라고 하는데요.
‘방범 포차’라는 명분으로 ‘오원춘 세트’ ‘고영욱 세트’ 등 범죄자 이름을 내걸고 곱창볶음, 튀김 등을 팔았다고 합니다. 알려졌다시피 오원춘 사건은 납치 후 살해·시신훼손(토막), 고영욱은 미성년자 성폭행 및 성추행 사건입니다. 이 주점에 온 학생들은 “오원춘 세트 하나 주세요” “고영욱 세트요”하면서 주문을 한 후 곱창과 튀김을 맛있게 먹었겠죠.
가해자들이 받는 징역형과 달리 ‘기한도 없는’ 상처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 본인이나 가족들이 이 모습을 본다고 상상해 봤다면, 어린 아이도 아닌 대학생들이 이런 주점을 기획할 수 있었을까요.
운영진이 사과문에서 ‘경악스런 범죄에 경각심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라고 의도를 전했지만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지난 5월엔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는 학교 (박용성) 이사장을 향해 ‘사랑합니다’라는 응원 플래카드를 들고 검찰청 앞에 서서 “이사장님이 새 건물을 짓는 등 학교를 발전시킨 게 고맙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대학생(중앙대)이 현장의 취재진을 씁쓸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이 학생들에겐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조심성과 배려보다 대학축제 주점의 ‘주목끌기’ 혹은 ‘재미’, 범죄 의혹에 대한 규명과 단죄보다 ‘물적 성장’이라는 가치가 우선했던 걸까요.
가치의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조차 되지 않는 ‘지성의 전당’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afero@kukimedia.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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