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 심리학] 사재혁의 폭행, 원인은 ‘사재혁’이다

[이슈 인 심리학] 사재혁의 폭행, 원인은 ‘사재혁’이다

기사승인 2016-01-05 09:33:55

국민에게 희망과 자랑으로 여겨지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그 주인공의 폭행, 그것도 후배 폭행의 소식이 들려와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장본인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역도의 영웅 사재혁(31·사진) 선수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31일 춘천에서 가진 송년 모임에서 후배 황우만(21) 선수를 폭행해 전치 6주의 중상을 입혔다. 그는 4일에 결국 자격정지 10년을 받았고, 사실상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춘천경찰서에 따르면 사재혁은 “지난해 2월 태릉선수촌에서 뺨을 때린 적이 있고, 이에 대해 서로 오해를 풀기 위해 후배를 불러 얘기하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우발적으로 폭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은 한국 체육계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중·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체육전공 학생들 간의 인사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90도가 넘는 각도로 인사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폭력조직들의 인사와 비슷해 보인다. 위계질서가 군대의 그것과 흡사해 보일 정도다.

이번 사건은 서로 관련이 없는 타인과의 싸움이 아니다. 선후배 사이에서 일어난 ‘폭력’이다.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난 폭력인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폭력의 신’은 ‘비아(Bia)’다. 그리고 비아의 형제는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크라토스(Cratos)와 ‘경쟁심’의 신 ‘젤로스(Zelos)’가 있다. 누나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다.

폭력의 형제가 권력과 경쟁심이라는 것은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선배로서의 ‘권위’는 자연스럽게 ‘권력’으로 변화된다. 이런 변화로 인해 후배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선배로부터 ‘자신이 받았던’ 폭력적 권력을 무의식적으로 스스로가 누리게 된다. 사재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권위가 권력으로 변화된 것이다.

경쟁심은 같은 체급의 선수들끼리의 경쟁도 있지만, 선배와 후배의 경쟁도 있고 또 선배 스타와 후배 스타의 인기경쟁도 존재한다. 이는 마치 형제간의 경쟁(sibling rivalry)과 같다. 부모로부터 ‘상벌’을 받거나 피하려는 심리로 인해 ‘경쟁심과 질투심’이 발달하는 것처럼, 사재혁은 건강하지 못한 경쟁심리를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폭력을 통해 권력과 경쟁심을 표출하면서 스스로 ‘승리’의 감정을 가져보지만 결과적으로 상대방은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나만 괜찮으면 돼!’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게 돼!’ ‘그렇게 할 때 기분이 좋아’ 등의 심리는 ‘자기 애착’이 심한 상태일 때 나타난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고 부른다. 그리스신화에 미소년 나르키소스(Narcissus)에서 유래했다. 나르키소스는 사냥을 나갔다가 목이 너무 말라 샘에 있는 물을 마시려고 했다. 그러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빠진 나르키소스는 계속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바라보다가 탈진해서 죽는다. 그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수선화(Narcissus, 水仙花)다. 1899년에 이런 신화의 이야기를 가져와 ‘이즘(-ism)'을 붙여 독일 정신과 의사였던 윌헬름 네케(Wilhelm Nacke)가 의학용어로 처음 사용했다. 그러다 1914년 정신분석학파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발표한 ‘나르시시즘에 관하여(On Narcissism)'에서 정신분석 용어로 도입했다.

남이 보이지 않고 나만 보이게 되는 것, 그것이 나르시시즘이다. 어려서 부모와 주위의 모든 사랑을 받으며 자라다가, 그런 무한의 사랑이 줄어들면서 스스로에 대한 사랑에 집착하게 된다. 이것이 자기애적 성격장애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의 경우, 이런 관심이 집중됐다가 사라지면 스스로에 대한 사랑에 집착하게 된다. 이 때 되찾지 못하는 타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집착하게 된다. 사재혁 선수의 경우도 2008년 금메달을 따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지만 부상이 겹치면서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이 멀어진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 감정이 스스로에게 집착하게 만들고, 또 선수들 사이에게 자신이 중심이 됐어야 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스포츠계의 위계질서에서 선배의 자리에 오르다 보니 자연스레 후배는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대부분 알지 못하는 타인과의 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예기치 않게 우연히 발생하는 ‘우발성’의 심리가 강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무의식적인 욕구’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쟁심이 강한 스포츠에서 이런 폭력성이 많이 일어난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1등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다.

2012년 4월 27일 경기도 평택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겸 런던올림픽대표 선발전에서 남자 85kg급에서 동메달 3개(인상167kg·용상203kg·합계370kg)를 목에 건 사재혁은 “메달 색깔이 아쉽다”고 했다. 이렇게 늘 금메달이 아니면 ‘행복하지 않은’ 경쟁에 있는 선수들은 ‘선의의 경쟁’보다는 ‘스트레스로 인한 경쟁심’이 가득하다.

미국 코넬 대학교 심리학과 빅토리아 메드벡(Victoria Medvec)과 토마스 밀로비치 (Thomas Gilovich) 연구팀은 1992년에 있었던 스페인 바로셀로나 하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23명의 선수와 동메달 18명의 선수의 행복지수에 대해 1995년 ‘작은 것이 더 클 때: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반사실적 사고와 만족(When less is more: counterfactual thinking and satisfaction among Olympic medalists) 논문을 성격 및 사회 심리학저널에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금메달을 딴 선수를 10점 만점 기준으로 했을 때, 결과는 은메달을 딴 선수들의 행복지수가 4.8, 동메달을 딴 선수들의 행복지수는 7.1 이였다.

은메달리스트들은 “거의 할 뻔 했는데(might have been)”라고 금메달과 ‘비교감정’을 가지면서 아쉬워한 반면에, 동메달리스트들은 4등을 한 선수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즉, 2등은 스스로를 고통(agony)스럽게 만들었고, 3위는 자신을 위로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2등과 3등의 다른 행복지수가 우리나라 선수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점이다.

만약 같은 실험을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해보면 2등을 하든 3등을 하든 전부 실패자로 바라보기 때문에 행복지수가 현저하게 낮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스트레스로 인해 스포츠 선수들은 1등 아니면 ‘실패자’가 될까봐 ‘비교감정’이 경쟁심으로 작동하면서 폭력성마저 키우게 되는 것이다. 사재혁은 2012년 런던올림픽 경기 후 사재혁은 “입에 욕을 달고 훈련했다”고 자신의 훈련이 어렵다는 것을 돌려 말했다. 훈련의 강도가 높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었지만 ‘욕’을 달고 훈련했다는 것이 스스로의 정신과 마음을 깨트리는지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2002년에 대안의학 박사인 에모토 마사루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고성능 현미경으로 직경 1㎜의 작은 물의 입자를 관찰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두 개의 스피커 사이에 약국에서 파는 증류수를 놓고 실험을 했다. 두 종류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하나는 베토벤의 교향곡 ‘전원’과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그리고 쇼팽의 ‘이별의 곡’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분노와 반항적인 언어를 담고 있는 시끄러운 음악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클래식을 들려준 물은 아름다운 결정의 형태를 보였다. 반대로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준 물은 결정이 깨어진 형태였다. 이 실험을 통해 생각을 넓힐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의 몸 70% 이상이 물이다. 그러니 몸의 건강을 결정짓는 것이 ‘물’이기 때문에 시끄러운 ‘소리’가 아닌 부드럽고 아름다운 소리를 많이 들어야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는 지식으로 확장할 수 있다. 하지만 실험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에는 더 놀라운 실험이 존재한다. 물이 들어있는 유리병에 긍정적인 글과 부정적인 글을 적어 물 쪽으로 붙여서 실험을 했다. 이 역시 ‘소리’와 같은 결과를 가졌다.

‘고맙습니다’라는 글을 붙인 물은 깨끗한 육각형의 결정을 보였다. 반대로 ‘망할 놈’의 글자가 붙은 물은 찌그러진 결정을 보였다. ‘파동(wave)’을 통해 전달되는 ‘소리’를 넘어서 ‘글자’의 힘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실험이다. 입에 욕을 달고 훈련한 사재혁의 마음이 얼마나 깨졌을지 안 봐도 알 수 있다.


세상에 ‘맞을 짓’에 대한 기준은 없다. 폭력을 행하는 사람들의 ‘맞을 짓’에 대한 기준은 자신들이 이전에 폭행당했던 상황과 행동으로 정한 것이다. 그 잣대들을 가장 가까운 타인에게 들이대는 것이다. 가정폭력도 그렇고 학교폭력도 유사하다.

사재혁이 후배들을 이끌어 다시 한번 2008년처럼 기적의 드라마를 기대했지만, ‘폭행’으로 막장드라마를 써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체육계에 폭력사건을 없도록 대대적인 시스템 변화를 고려해봐야 할 때가 됐다.

이재연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상담사회교육전공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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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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