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지난해 11월19일 일본 도쿄돔 기자회견장.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 한국과 일본의 4강전이 끝난 직후 이 곳 분위기는 그야말로 살벌했다. 일본 기자들은 결과적으로 9회 대역전패(3대4)의 원흉이 된 에이스 오타니 쇼헤이의 교체(8회)를 두고 대표팀 고쿠보 감독을 향해 쏘아댈 활 시위를 있는 힘껏 잡아당기고 있었다.
고쿠보 감독에 대한 ‘공세’가 끝난 후 한 외국 기자가 승장 김인식 감독에게 짓궃은 질문을 던졌다.
“감독님이 고쿠보 감독이었어도 (무실점 투구를 하던) 오타니를 7회까지만 던지게 했을까요?”
마치 앞서 고쿠보 감독이 오타니 교체에 대한 일본 기자들의 ‘원망 서린’ 질문에 “7회까지 던져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대답한 것을 대신 반박해달라고 하는 듯 했다.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일본 기자들 앞에서 김 감독은 잠시 당황하는 것 같더니 침착하게 대답했다.
“투수 교체에 대한 건 그 팀의 감독 만이 압니다. 제가 상대 팀 투수 교체에 관해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없어요.”
김 감독 같은 명장이 아무리 다른 팀이라고 해도 “그 팀 감독 만이 안다”고 한 건 진심이라기 보다는 고쿠보 감독을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지난 2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한 청와대.
박 대통령은 신산업 투자지원을 위해 규제시스템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단 모두 물에 빠트려놓고 꼭 살려내야만 할 규제만 살려두도록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그저 표현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그런데 규제시스템 대한 취지를 전달하는데 있어 이 비유가 불가피하기라도 했던 걸까. 아니라는 것 역시 삼척동자도 안다. 박 대통령의 뇌리에서 ‘세월호 참사’라는 기억 자체가 사라진 듯한 느낌마저 준다.
(안 나온다고 잊어서는 안 되지만) 더구나 최근엔 단원고의 기억교실 보존 문제로 세월호가 언론에 다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유가족들이 ‘물에 빠뜨려’라는 말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고 소름이 돋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 내에서 몇 명이나 될까. 왜 정작 박 대통령은 일반 국민들 누구나 다 아는 이 ‘상식’과 ‘도리’를 모를까.(아니면 외면할까.)
말(言)로 타인을 배려하는 건 두 가지이다.
상대방을 위로하고 응원해주는 말을 ‘하는 것’과 상대방이 듣기 싫은 말을 (듣는 앞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라도 들을 것이 확실할 때)
‘하지 않는 것’이다.
‘하는 것’을 안 하면 상대방은 ‘서운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하지 않는 것’을 굳이 한다면 상대방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말은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말을 해야 정치도 국가운영도 할 수 있지만, 국가 최고 리더라고 말을 ‘하지 않는’ 배려에 예외가 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의 “물에 빠뜨려놓고”에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실망하는 이유다. afero@kukimedia.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쿠키영상] '여자의 일생' 갓난아기가 할머니가 되기까지...그리고?
'신인류의 발견?' 세상 곳곳을 누비는 초현실적 생명체의 정체는...
[쿠키영상] 절벽점프에 실패한 남성의 생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