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희정 기자] 경상북도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경북도청 신청사 이전이 지난 2월 완료됐다. 도청 이전은 무엇보다 대구에 있던 경북도청이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지방자치 시대에 걸맞게 행정 관할구역과 도청소재지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또 청사 이전은 단순한 소재지 변경이 아니다. 도정의 구심점과 상징성 확보, 지역정체성 제고를 비롯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북 북부지역의 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기고, 이를 통해 도내 균형 발전을 가져올 경북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편집자주>
◇도청 이전 왜 필요했나?=경북은 올해 대구에서의 더부살이를 끝내고 120년 만에 도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안동·예천 신도청 시대를 열고, 새로운 희망의 나래도 활짝 펼치기 시작했다.
300만 도민의 행정적인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경북도청이 대구에 있었던 이유를 알려면 그 연원부터 살펴봐야 한다. 때는 1314년 고려 충숙왕 원년으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에 경상도(경주와 상주에서 이름을 따 지음)라는 구역이 생겼다. 지금의 경북도청 격인 경상감영이 대구에 들어선 것은 다시 287년이 지난 1601년이었다.
이후 1896년 도(道) 체제가 도입되면서 경상북도가 생겼다. 경북도청은 1910년 대구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 자리에 들어섰다가 1966년 지금의 대구 북구 산격동으로 이전했다.
그런데 1981년 경북도청의 위치에 관한 미묘한 문제가 발생했다.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돼 분리되면서 경북의 관할구역과 청사 소재지가 일치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는 지방자치에 걸림돌이 됐고 도정의 구심력 약화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이 때부터 대구에서 더부살이를 한 경북도청 이전은 300만 도민의 숙원사업이 됐다. 지방자치시대에 주민과 관할구역, 자치권을 구성요소로 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소 소재지가 자치단체 관할구역 내에 위치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과 함께 도청 이전 문제가 공론화되자 대구시가 분리된 지 27년 만인 2006년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도청이전’에 관한 결단을 하게 된다.
이후 2008년 6월 9일 도청 이전 예정지를 안동시와 예천군 일원으로 정하고, 2010년 4월 경북개발공사 사업시행자 지정 후 같은 해 11월 개발계획 및 실시계획 용역에 착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 2월 경북도청은 대구 북구 산격동을 떠나 예천·안동에 새 둥지를 틀었다. 경상북도라는 이름이 붙은 지 120년 만이고, 1966년 산격동으로 이전한 지 50년,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돼 분리된 지 35년 만의 일이다.
이와 함께 경상북도지방경찰청과 경상북도교육청 등 산하 각급 행정기관이 옮겨가고, 2027년까지 10만명이 살게 될 경상북도 청사 이전 신도시가 건설된다.
◇안동·예천으로 결정된 이유는?=경북도청 이전지인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 일대는 경북의 지리적 중심지에서 38.3㎞, 인구중심지에서 48.2㎞ 떨어져 있고, 경북에서 가장 낙후된 북부지역에 포함돼 있다. 이곳은 도청 이전 예정지 선정을 위한 평가에서균형성, 접근성, 친환경성, 경제성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성장성에서도 평가대상지 가운데 3번째로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이전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청정한 낙동강과 풍부한 산림자원으로 둘러싸여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북쪽은 아름다운 검무산(劍無山, 평화의 상징)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구담 습지와 하회마을을 접하고, 남동쪽에 대형저수지(여자지)와 서쪽 5㎞에 청정하천인 내성천이 흐르고 있어 천혜의 자연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태백산과 소백산의 남쪽에 위치해 신이 가르쳐 준 복지(福地·풍수지리에서 집터의 운이 좋아 운수가 트일 땅)라고 했고, 현대 풍수지리학의 대가인 최창조 박사는 ‘전남은 무안, 경북은 안동이 도청 이전의 최적지라고 주장’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백두대간 지맥인 주산 검무산을 뒤로하고 낙동강과 하회마을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와 장풍득수(藏風得水·풍수지리에서 바람을 피하고 물을 구하기 쉬운 곳)의 지세로 도청입지로 손색없는 명당으로 꼽혔다.
◇도청 이전 기대효과는?=도청이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도청소재지와 행정 관할구역이 일치됐다. 또 한국정신문화의 본향인 안동·예천으로 옮겨감으로써 새로운 정신문화를 꽃피울 좋은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도는 도청 이전을 계기로 신도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발전 축이 만들어져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북 북부권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신청사는 정부청사인 세종시와 108㎞ 떨어진 동일 위도 상에 위치해 있어 이를 연결하면 동서발전축을 형성할 수 있다. 소위 한반도황금허리경제권이다.
도는 앞으로 강력한 허리경제권을 만들고 이를 통해 수도권과 남부권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국토균형발전에도 기여하겠다는 구상이다.
도청 이전으로 맞춤형 행정서비스 제공도 가능해졌다.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이 서비스의 수요자인 주민과 함께 생활함으로써 도민의 만족도와 행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청이 도내가 아닌 대구시에 소재하는 데 따른 도민의 불편을 해소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도청 이전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과 도민화합의 구심점을 확보함으로써 경북이 재도약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2008년 도청이전지가 결정된 후 김관용 도지사는 담화문을 통해 “선조들이 지켜왔고 우리의 아들딸들이 살아갈 이 땅 경북을 다시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세워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도청 이전이라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 웅도 경북의 자존과 영광을 다시 한 번 조명하고 도약의 불씨를 지펴야 한다. 경북 발전의 역사적 소임과 사명이 지금 우리에게 있음을 인식하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새로운 경북의 역사를 창조해 나가자”며 “백년, 천년 후에도 사랑받는 도읍지가 될 수 있도록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2016년. 도는 8년이 지나 이제 막 새로운 도읍을 건설했다. 개도(開道) 700년의 웅대한 역사와 문화, 혼을 새천년으로 이어갈 경북도와 300만 도민은 지금 기대감에 가득 차 있다. shine@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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