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 병원에서 손가락 골절 수술을 받은 20대 군인이 해당 병원 간호사가 잘못된 약물 투여로 인해 숨진 사건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했다. 특히 해당 병원 측이 사건 발생 후 증거를 은폐하려던 정황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가천대 길병원 간호사 A씨는 작년 3월 19일 오후 1시50분께 손가락 골절 접합수술을 받고 병동에 입원 중이던 육군 B 일병에게 주사제를 투약했다. 이와 관련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 과정에서 A간호사는 의사가 처방전에 쓴 약물인 궤양방지용 모틴과 구토를 막는 나제아가 아닌, 마취 때 기도삽관을 위해 사용하는 근육이완제 ‘베카론’을 잘못 투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B 일병은 주사를 맞기 2분 전까지 친구들과 휴대전화로 카카오톡을 주고받았었지만, 투약 후 3분 뒤 심정지 증상을 보였다. 주사를 투약한 날 오후 2시30분께 병실을 찾은 누나가 B일병을 발견했지만, 의식불명에 빠졌고 지난해 4월 23일 저산소성 뇌 손상 등으로 숨을 거뒀다.
이번 사건과 관련 인천지법 형사5단독 재판부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간호사 A씨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길병원 간호사였던 A씨는 “주치의가 지시한 약물을 정상적으로 투여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B일병에게 베카론을 투약했다는 직접 증거가 없음에도 수시로 비우게 돼 있는 간호사의 카트에서 사고 후 베카론 병이 발견된 점 등 정황증거와 간접증거를 토대로 검찰 측 공소사실을 인정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재판부는 정확한 확인 없이 약물을 투약해 피해자 B일병을 숨지게 한 중한 결과를 초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간호사로서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잘 살피고 처방전에 따른 약물을 정확하게 투약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다”면서 “피고인의 과실로 젊은 나이에 군 복무를 하던 피해자는 생명을 잃었고 유가족들은 큰 고통을 느껴 과실이 매우 중하다”고 선고 이유를 제시했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는 길병원 측이 증거를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도 확인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길병원은 사고 발생 직후 병동 안에 있던 베카론을 없애고 간호 기록지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 각종 증거를 은폐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또한 길병원은 사고 당일 의료사고를 대처하는 적정진료관리본부장이 참석하는 대책회의를 열었으며, 이 대책회의에는 병원 부원장과 담당 의사, 법무팀장 등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연합뉴스에 따르면 병원 측은 사고 후 B일병이 숨진 병동에 설치된 비치약품함 안에서 베카론 3병을 빼내고 고위험 약물의 위치도 바꿨으며, 병원 직원들은 이 약물을 병원 내 약국에 반환한 것처럼 약품비품 청구서와 수령증을 허위로 작성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3개월 뒤 다시 약품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 손에 건네져 책상 서랍에 보관됐던 관련 자료가 수사기관에 넘겨졌다. 이에 대해 길병원 적정진료관리본부장은 지난해 5월 수사기관 조사에서 “베카론을 잘못 투약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사고 직후 병원 측의 조치로 볼 때 베카론 오투약으로 B일병이 사망한 사실을 A씨와 병원이 사전에 알았던 것으로 판단하고, A씨가 투약 후 5분가량 B일병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눴다는 취지의 간호기록지가 의도적으로 사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허위로 작성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병동에서 보관하던 베카론 병을 두고 병원 관계자들이 한 일련의 조치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사고 당시 병동에 해당 약물이 어느 정도 보관돼 있었는지 등 판단이 불분명해지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하고 “병원의 전반적인 약품관리 상황이 체계적이지 못했고 그 과실도 무시할 수 없다. 언제든 환자에게 약물이 잘못 투약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밝혔다. 송병기 기자 songb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