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부산)] 주말인 2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 공사현장은 사회·정치계에 들이닥친 갖은 논란과 무관하게 분주한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요란한 기계소리와 우렁찬 작업반장의 외침이 활기를 북돋고 있었지만, 사무동이 위치한 모델하우스 입구엔 자못 엄중한 통제가 분위기를 내리 깔았다.
엘시티는 근래 비선실세·국정농단으로 세간의 화제가 된 최순실(개명 최서원·60)씨의 입김이 작용한 정황이 포착되며 구설수에 올랐다. 이영복 엘시티 회장과 시공사인 포스코, 그리고 최씨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고영태씨의 연결고리가 속속들이 드러나며 대규모 개발사업 중 석연찮게 인·허가가 떨어진 용도변경과 고액의 금융권 대출이 도마 위에 오른 것.
이영복 회장은 500억원대 횡령 혐의로 지난 10일 검거됐다. 앞서 경찰은 이 회장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서울 강남 모 유흥주점 경리담당 전모(40)씨를 구속했는데, 호스트바 경력이 있는 고영태 이사가 전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며 최씨의 대형 부동산 계약 개입 의혹은 설득력을 얻었다.
공사장 입구에 들어서자 수북한 공사자재와 대형트럭, 각종 기기가 눈에 가득 찼다. 수개월 전부터 근무 중이라는 한 안내센터 직원은 “(최근 논란이 된) 인물들이 드나드는 걸 본 적이 없다”며 “그런 분들이 이런 곳에서 만나겠느냐. 그들만 아는 조용한 장소에서 이미 다 얘기를 했겠지”라 말했다.
엘시티는 크게 호텔동과 상가동, 아파트동으로 구분된다. 가장 높은 호텔동은 101층 규모로 고도 제한 기준이었던 60m를 훌쩍 넘을 전망이다. 그 외 상가동과 아파트동은 각각 85층 규모로 지어진다.
모델하우스격인 ‘엘시티 더샵’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은 신분조사를 받아야 한다. 입구를 지키는 관계자는 근접하는 이들에게 일일이 검문작업을 했다. 기자가 출입을 요구하자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면서 “그 외 입장은 힘들다. 내부 사진촬영도 불가”하다고 잘라 말했다.
엘시티와 해안가는 그야말로 지근거리에 있었다. 모델하우스의 경우 채 10발자국을 넘기지 않고 모래사장에 도달할 수 있었고, 호텔동은 20~30m 거리였다.
엘시티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는 시공사로 대우건설을 선정했다가 돌연 계약을 해지하고 중국 최대 국영 건설기업(CSCEC)과 손을 잡았다. 이후 CSCEC는 사업성 저하를 이유로 엘시티 사업에 손을 뗐는데, 그때 ‘구원투수’처럼 등장한 게 현 계약사인 포스코건설이다. 이들은 ‘책임준공’을 내세우며 우여곡절 끝에 계약이 성사된 듯 설명했지만, 일각에선 “잘 짜인 시나리오대로 포장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우려와 달리 분양은 꽤 활발히 이뤄지는 모양새다. 공사현장 반경 1km 내 건물에 ‘LCT’란 문구를 내걸지 않은 부동산이 없을 정도였다. 공사현장에서 약 400미터가량 떨어진 빌딩 한 구석의 부동산 실장은 “하루에 평균 3건 정도의 분양문의가 있다”면서 “엘시티 입구(쪽에 있는 부동산)는 훨씬 많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좀 더 떨어진 위치에 있는 부동산의 직원은 “상가동은 당초 명품샵 위주로 입주가 이뤄진다고 알고 있다”면서 “개인 분양여부는 미정인 상태”라고 말했다.
하루 10건 정도의 상담을 받는다는 공사현장 인근 부동산 직원은 “저가 (아파트) 매물을 찾는 사람이 특히 많다”면서 “그런 자리를 찾기가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공사들이 잇따라 사업성에 문제가 있다며 손을 뗀 것과 대비되게 천문학적으로 모인 자금은 의문을 자아낸다. 앞서 엘시티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PF)으로 은행, 증권·보험사로부터 조 단위에 육박하는 대출을 성사 시켰다. 줄기차게 사업성에 문제가 있다 한 정·재계 목소리가 ‘작전세력의 공작’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르·K스포츠재단이 순식간에 수백억 원을 모금한 것과 비슷한 방식이 아니냐는 의심스런 눈빛이 자연스레 쏟아지고 있다.
엘시티 분양정보에 정통하다는 공사장 인근 분양 관계자는 엘시티 프리미엄이 “어마어마하다”고 묘사했다. 그는 “강이나 바다를 낀 고층건물 프리미엄은 이미 한강에서 충분히 검증된 것”이라면서 “롯데호텔 시너지도 엄청나다”고 말했다.
또한 “이미 ‘있을 수 없는’ 인·허가와 PF가 이뤄진 상황에서 일각에선 면세점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부동산 업자 사이에서는 서울 강남 소재 고급 호텔 이상의 프리미엄을 논할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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