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창원=강승우 기자] 전국의 청각장애인(농아인) 500여 명을 울린 농아인 투자사기단 ‘행복팀’이 범행 6년 만에 경찰에 적발됐다.
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속여 투자를 미끼로 거액을 가로 챙긴 이 사건은 가해자들도 같은 농아인이어서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행복팀 조직 결성부터 와해까지 경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재구성해봤다.
◇행복팀 조직 결성
A(44)씨는 2010년 B(46‧여)씨, C(48)씨와 함께 ‘행복의 빛’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투자사기 범행 공모했다.
농아인들을 상대로 투자사업을 한다고 속여 투자금을 가로채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들은 이 조직에서 나란히 총책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2012년 C씨가 사기 혐의로 구속돼 교도소에 수감됐다.
C씨에게서 조직을 넘겨받은 A‧B씨는 D(42‧여)씨를 끌어들이면서 ‘행복팀’이라는 조직을 새로 만들었다.
D씨에게 행복팀 총괄대표를 맡기면서 이들 3명은 본격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였다.
◇같은 농아인이 농아인 상대로 사기행각
이 사건에 연루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농아인이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장애인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가해자들이 그 심리를 이용해 범행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은 “행복팀에 투자하면 투자금의 3~5배를 돌려받는다” “아파트와 수입차도 받을 수 있다” “좋은 직장에 취직시켜 주겠다”고 속이며 투자금 명목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돈을 뜯어갔다.
당장 투자금이 없던 피해자들의 경우에는 집과 자동차 등을 담보로 제2금융권에 대출을 알선해주면서 투자금을 닥치는 대로 끌어 모았다.
행복팀은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피해자들을 ‘똥’으로 언급하며 다른 피해자들을 물색하라고 지시했다.
◇조폭처럼 ‘충성맹세’ 강요하며 조직 관리
이들은 전국을 대전‧경기‧경남‧서울 등 4개 구역으로 나눠 각 지역대표에게 조직 관리를 맡겼다.
각 지역마다 하양, 보라, 노랑, 파랑색으로 구분해 일명 ‘하보노파’ 팀으로 불렸다.
각 지역대표들은 투자자 중에서 특히 활동력이 왕성하고 충성심이 강한 농아인 26명을 뽑아 지역팀장에 앉혔다.
이들은 월 2~3회 정기적인 단합회를 열고 조직원들에게 ‘충성맹세’를 강요했다.
또 ‘상급자에게 90도 인사’ ‘배신하면 안 된다’ ‘이를 거역하면 끝까지 찾아내 죽일 것이다’는 행동 규율과 조직 강령을 만들어 폭력조직처럼 엄격하게 관리해왔다.
피해자들이 사기행각을 의심하면서도 경찰에 쉽게 신고하지 못한 이유다.
조직 내부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때는 중간팀장 4~5명을 의심 가는 조직원 집과 회사로 보내 불시에 휴대전화를 검사했다.
다른 모임에 나가지 못하도록 외부와의 접촉을 아예 차단시키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미행 영상을 찍거나, 협박해 억지로 잘못을 강요하는 동영상을 촬영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려 피해자들을 관리해왔다.
◇피해자들은 빚더미, 핵심간부는 호의호식
그럼에도 이 같은 범행을 총괄한 총책 A씨는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숨겼다.
90대 재력가 행세를 하며 조직 내에서 ‘제일 높은 분’으로 신격화됐다.
이들은 수년 동안 피해자들을 교육하며 사이비 종교집단처럼 세뇌시켰다.
이 때문에 A씨 실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조직 내에서도 거의 없었다.
피해자들에게서 받은 돈은 오만원권 현금으로 상자에 담아 전달하게 했다.
또 범행에는 대포폰을 사용하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런데다 피해자들을 세뇌 교육까지 한 탓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범행이 들통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피해자들이 뒤늦게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경찰에 붙잡힌 A씨는 90대 노인은 아니었지만 재력가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월급으로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높은 대출이자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렸다.
반면 A씨를 포함한 핵심간부들은 피해자들에게서 가로 챙긴 돈으로 호의호식했다.
고가 외제차를 수시로 바꿔 타고 다니며 고급 전원주택에 살면서 고가 명품 옷을 입고 다니는 등 초호화생활을 해왔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목욕탕 때밀이를 하면서 번 돈으로 고가 외제차 등을 구입했다”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남 창원중부경찰서는 A씨 등 행복팀 핵심간부 8명을 범죄단체조직 혐의 등으로 구속하고 지역팀장 등 2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농아인 500여 명에게서 280억원 상당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투자사기단에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적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사기단에 이 혐의가 적용돼 총책이 징역 20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 조직이 사실상 와해됐다고 보고 있다.
김대규 수사과장은 “아직 피해 사실을 알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신고도 잇따를 것으로 보여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가해자들의 처벌 못지않게 피해자들의 실질 피해회복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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