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전미옥 기자] 장여구 백병원 외과 교수가 걸어온 의사의 길은 ‘봉사하는 삶’으로 요약된다.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발판을 마련하고 가난한 환자들에 헌신해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고(故) 장기려 박사의 손자이기도 한 그는 조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봉사의 길을 걷고 있었다.
블루크로스 의료봉사단을 통해 꾸준히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차상위계층과 노숙자 환자들을 상대로 무료진료를 진행하는 한편, 일 년에 두 번 이상은 캄보디아, 라오스 등 해외 의료취약지에서 의술을 전하고 있다.
장 교수는 봉사가 주는 효용에 대해 “자기만족”이라고 말한다. 그는 “봉사를 통해 봉사자가 얻는 만족이 무척 크다. 제가 그분들한테 도움이 되고, 더 나은 삶을 선물했다는 자체가 기쁨을 준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함께 봉사한 이들을 보면 봉사를 통해서 삶이 바뀌는 사례가 많다”며 “해외 의료봉사를 갈 때에는 청소년봉사단 친구들도 함께하는데, 어린 친구들이 봉사를 통해 보람을 느끼고 또 어려운 현지 환경을 접하면서 본인이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배운다. 대학 재수 중에 있던 한 학생은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꿈을 찾고 공부에 매진해 의대에 입학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의료봉사는 의료인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은 전체의 10%에 불과하고, 순수 자원봉사자가 나머지 90%를 채운다. 의료서비스 이외에도 진료지원, 교육, 말벗 등 다양한 역할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만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가 생각하는 의사는 기본적으로 ‘봉사하는 사람’이다.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나 봉사를 통해 만난 환자 모두 ‘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이기 때문에 행위나 마음가짐에 있어 차이점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이어 “의사에게 기대하는 국민 인식이 높아 일부가 삐걱거리면 더 확대되는 면도 없지 않다”면서도 “그럼에도 의사이기 때문에 더욱 공정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그는 ‘희귀질환 알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질환으로 생긴 부정적 인식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는 사회적 인식개선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에서다.
장 교수는 “층판상어린선이라는 건선을 일으키는 희귀 피부질환이 있다. 피부가 각화되는 증상으로 보기에는 안 좋을 수 있지만 이 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실제로 학교를 다니고 생활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며 “그럼에도 사회적 인식 때문에 상처받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바르게 알아야 도움을 줄 수 있고 이러한 의료지식을 전하는 것도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해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대로 의사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자연히 의사를 꿈꿨다. 장 교수는 “가업을 잇겠다거나 특별한 사명감이 있었다기보다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의대에 들어갔다”며 “자격이나 재능여부를 떠나 누구든지 자신의 직업에 점차 맞춰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야 의사라는 직업에 완전히 적응된 것 같다”고 말했다.
조부의 명성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부담을 되도록 안 느끼려고 한다”며 “저에게는 그저 말이 잘 안 통하는 평범한 할아버지셨다”고 답했다. 장 교수는 “할아버지께서는 북쪽에 계신 가족을 많이 그리워하셨다. 할머니께서 보내주신 편지를 읽고 눈물짓다가도 ‘할아버지 우세요?’하고 물으면 졸려서 하품했다면서 말을 돌리시는 할아버지로 기억된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장 교수는 “할아버지나 아버지께서 의사로서의 조언을 많이 하시는 편이 아니다. 다만 의대 졸업 때 조언하셨던 공부하는 자세로 임할 것, 환자를 불쌍히 여길 것,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대우할 것 세 가지를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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