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정현수 교수(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응급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승객 여러분 가운데 의사선생님이 계시거나 의학적 처치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신 분은 즉시 00객차로 와주십시오!”
지난 1월 초, 목포로 향하던 KTX가 천안아산역에 정차했을 때 승무원의 황급한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60대 후반의 여성 환자가 갑작스레 거품을 물고 몸을 심하게 떠는 증세를 보였다. 주변 승객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허둥대며 발만 구르고 있었다.
그 순간, 한 젊은 여성이 환자를 둘러싼 무리를 헤치고 뛰어나왔다. 환자를 확인한 여성은 기도를 유지해 호흡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도우면서 회복되기를 지켜봤으나, 이내 곧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환자는 의식을 잃은 채 널브러졌다. 호흡을 하지 못해 창백해지고 맥박은 만져지지 않았다.
여성은 즉시 환자를 객차 바닥에 눕히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여성이 사력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사이, 같은 열차에 탑승하고 있던 소방관이 달려와 돕기 시작했다. 여성과 소방관이 손을 바꿔가며 가슴압박을 시행한지 10여분 만에 환자는 다행히 맥박과 호흡을 되찾기 시작했다. 출동한 119 구급대의 도움을 받아 환자는 천안 시내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큰 탈 없이 건강을 되찾았다.
하마터면 고귀한 생명이 한 순간에 사그라질 수 있었으나, 빠른 시간 내에 적절한 방법으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덕에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평소 충분히 심폐소생술을 반복하여 몸에 익히고 응급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왔던 젊은 여성의 활약이 환자와 가족, 그리고 열차 승객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젊은 여성은 가족들과 군입대하는 남동생을 배웅하러 나섰던 세브란스병원 새내기 간호사였다. 우리는 종종 언론을 통해 심정지 상태에 빠진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생명을 구해낸 의인(義人)들을 접하게 된다. 의인들은 의료기관 종사자뿐 아니라 일반 회사원, 가정주부, 심지어 초등학생인 경우도 있다.
그만큼 우리는 언제 어느 장소에서든 심정지 상태에 빠지는 환자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평소 심폐소생술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요즘 인터넷 사이트 등 많은 매체를 통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으나, 심폐소생술 교육에 참여하여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심정지 환자 발생 건수는 2016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58여명에 달한다. 작년 한 해에 약 3만여명이 심정지를 일으켜 쓰러졌는데, 더욱 눈여겨봐야 할 사항은 해가 거듭될 수록 심정지 발생 건수가 가파르게 증가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처럼 잦은 발생 빈도에 비해 즉각적인 심폐소생술이 시행되는 경우는 드물어 안타깝다. 119 구급대원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닿기 전까지 일반 시민들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비율은 12.1%에 머문다. 스웨덴(55%)이나 미국(31%), 가까운 일본(27%)에도 크게 뒤쳐진다.
심정지 환자를 접한 사람이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시행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확률이 3배 이상 높아진다고 한다. 또한 심폐소생술 방법을 바르게 숙지하여 효과적으로 시행한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생존율 역시 3배가량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정지도 다른 질병처럼 회복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골든타임이 존재한다. 상황발생 시점부터 4분 안에 심폐소생술 같은 응급조치를 취해야 한다. 심장마비가 발생하면 온 몸으로의 혈액 순환이 중단되기 때문에, 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뇌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뇌는 혈액 공급이 4~5분만 중단돼도 영구적으로 손상될 수 있다.
잠시 눈을 감고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상황을 상상해보자.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가 갑자기 심정지 상태에 빠진다면 과연 나는 올바른 심폐소생술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시행할 수 있을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심정지 응급상황일 때, 의사도 119 구급대원도 아닌 ‘나 자신’이 평소 심폐소생술을 숙지하고 훈련했을 때만 가족과 친구·동료, 그리고 주위 사회 구성원들을 살릴 수 있음을 인식하자.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배우고 익히는 심폐소생술은 각박해져가는 오늘날 사회에 더욱 필요한 항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