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경기] 이영호도 피해갈 수 없었던 ‘패패승승승’의 내력

[그때 그 경기] 이영호도 피해갈 수 없었던 ‘패패승승승’의 내력

기사승인 2017-04-05 16:17:11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가 더 위대해져서 돌아온다.

26일 스타크래프트 20주년을 기념한 블리자드 행사 ‘I <3 StarCraft’에서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CEO는 “과거와 현대가 만나게 됐다”면서 리마스터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이번 리마스터링에서는 4K UHD 해상도 지원을 골자로 고음질 오리지널 오디오 추가, 한국어 지원, 배틀넷 인터페이스 개선 등 지금껏 블리자드가 쌓아온 기술집약적인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길 것으로 기대된다.

브루드워 하면 ‘보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e스포츠의 아버지로 일컫는 신주영과 이기석, 그리고 황제로 군림한 임요환까지. 스타크래프트는 e스포츠의 기원이라 할 만큼 큰 인기를 구가했다. ‘나 만큼 미쳐봐’라 자신한 한 프로게이머의 열정은 국제적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e스포츠의 기초가 됐다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링을 기념해 브루드워 명경기를 다시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저그는 상성한 테란에 불리하다. 경기가 무난히 흘러갈 경우를 가정할 때 초중반 테란의 파상공세를 막고, 후반 디파일러를 띄워야 비로소 유닛상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탓에 저그는 결승무대에 오르고도 좀처럼 테란을 이기지 못했다. ‘폭풍저그’ 홍진호로 촉발된 준우승 징크스는 ‘악마 저그’ 장진남, ‘투신’ 박성준 등 숱한 이들의 한으로 남았다. 이후 다시금 결승에 오른 박성준이 이병민을 상대로 이 징크스를 깼는데, 1999년 ‘KPGL배 하이텔 게임넷’ 대회가 열린 이래 무려 6년만이다.

이후에도 저그의 대 테란전 고전은 계속됐다. 최연성, 이윤열 등 당대 최고의 테란이 결승전에서 저그를 3대0으로 압도한 적은 있었지만 박성준, 이제동 등 내로라하는 저그들조차 테란을 상대로 결승전 클린을 만들지 못했다.

▲대인배에게 2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괴이하게도 저그의 ‘완승’은 없었지만 ‘역스윕’은 있었다. 지금껏 결승전에서 세 차례 '패패승승승'이 나왔는데, 모두 저그 대 테란전이었다.

가장 높은 무대에서 나온 역스윕의 기원은 김준영(당시 한빛 스타즈)이다.  ‘차렷저그’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행실이 모범적이었던 그는 뚝심 있는 경기운영으로 ‘대인배’로도 불렸다.

2007년 다음 스타리그 결승무대에서 김준영은 ‘버서커’ 변형태(당시 CJ 엔투스)를 만났다. 초반부터 몰아붙이는 광전사의 저돌적인 러시에 김준영은 순식간에 0대2까지 몰렸다.

그의 ‘대인배’ 기질이 빛을 발한 건 3세트부터다. 첫 결승무대임에도 침착한 수비로 수차례 위기를 극복한 그는 변형태의 광기를 잠재우며 세트스코어를 2대2로 맞췄다.

5세트, 가난하게 출발한 김준영은 가까스로 디파일러를 본대에 합류시켜 상대 자원줄에 타격을 줬다. 이후에도 사이언스 베슬을 침착하게 끊으며 후반까지 끌고 간 그는 ‘목장체제’를 완성하며 역전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영호, 송병구의 4강 탈락으로 흥행실패 우려를 낳았던 당시 결승은 사상 첫 역스윕으로 최고의 명승부가 됐다.

▲‘최종병기’도 피해갈 수 없었던 패패승승승

이영호는 브루드워 판에서 가장 오랜 기간 전성기를 누린 프로게이머로 평가된다.

빌드 정형화로 실력이 상향평준화 됐음에도 70%를 상회하는 승률을 기록한 그는 소속팀 KT 롤스터가 부진을 면치 못하던 당시에도 ‘패패승승승’을 버릇처럼 해내며 탄성을 자아냈다.

역스윕만큼 짜릿한 순간은 없다. 팬들의 환호성은 멎지 않았고, 이영호에겐 ‘최종병기’ ‘소년가장’ 등의 별칭이 따라붙었다.

2010년은 이영호의 최고전성기다. 당시 “김연아를 피겨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영호라면 모른다”란 말이 유행어로 나돌 정도로 e스포츠계에서 이영호의 입지는 확고했다.

그런 기대에 호응하듯 이영호는 개인전 결승무대에 가볍게 이름을 올렸다. 상대는 김정우(당시 CJ 엔투스)였다. 그 역시 좋은 폼을 유지 중이었지만 이영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영호는 무난하게 1, 2세트를 따내며 우승을 목전에 남겨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영호는 열매를 따진 못했다. 김정우가 3, 4세트에서 승리를 거두며 세트스코어를 동률로 맞춘 데 이어 5세트 맵 ‘매치포인트’에서 초반 저글링으로 몰아치며 기적 같은 역스윕에 성공한 것이다.

김정우는 사상 첫 개인전 우승으로 홍진호-박성준-이제동으로 이어지는 저그 계보를 이었다. 반면 역스윕의 조연으로 전락한 이영호는 씁쓸히 무대 뒤로 퇴장했다.

물론 이영호가 4강 이상부터 치르는 다전제에 자주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 한 번의 역스윕으로 그의 모든 커리어를 말할 순 없다. 실제로 그는 이날 패배 이후에도 폼을 유지하며 우승컵을 수차례 들어 올렸고, 2015년 말 성대히 은퇴했다.

▲이제동의 제2전성기를 이끈 대역전

이제동은 데뷔 첫 해 프로리그를 호령한 데 이어 양대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폭군'으로 군림했다. 숱한 대회 우승으로 종횡무진 활약한 그였지만 2008년 초 시작된 슬럼프로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어렵사리 폼을 끌어올린 그는 바투 스타리그에서 전 대회 우승자 송병구와 로열로더 후보 조일장 등 주목받는 선수들을 연달아 꺾으며 결승전에 올랐다. 상대는 ‘포스트 임요환’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정명훈이었다.

메두사, 왕의귀환에서 정명훈의 강력한 견제에 무너진 이제동은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3세트 ‘신추풍령’에서 메카닉을 준비하는 정명훈을 뮤탈-히드라 웨이브로 무너뜨린 이제동은 4세트에서도 강력한 몰아치기로 승리를 거뒀다.

대망의 5세트에서도 이제동은 자신의 최고 장기인 뮤탈리스크 뭉치기로 상대 본진을 초토화시키며 대역전승에 성공한다. 이후 이제동은 숱하게 광안리 무대에 오르는 등 맹활약했고, 역대 세 번째 골든 마우스(이윤열-박성준-이제동)를 거머쥔다.

dne@kukinews.com

이다니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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