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민수미, 정진용 기자] 제가 '문빠'랍니다.
저는 그저 문재인 대통령을 음해하는 기사에 댓글을 달고, 인사청문회에서 제대로 된 검증을 보여주지 못한 국회의원들에게 문자 몇 통 보냈을 뿐인데 말이죠.
처음에는 문빠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어요. 어감상 부정적인 말 같긴 한데, 찾아보니 문 대통령의 열혈 지지층을 일컫더군요. 여기에 연예인의 팬을 비하하는 '빠순이'가 더해져 문빠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래요. 제가 문빠라 칩시다. 그게 잘못입니까. 기사들을 보면 기가 찹니다. 일부 언론은 우리를 '종북세력'이라고 매도하거나 심지어 '개떼' '홍위병'이라 칭합니다. 물론 일부 지지자들의 과도한 행동은 잘못입니다. 쿠키뉴스는 기사 제목에 문 대통령을 '文'으로 한자 표기했다며 “제정신이냐”는 항의를 받아야 했다죠. 가시 돋친 반응 때문에 여론이 문빠를 색안경 끼고 바라보게 된 점,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한들 지극히 감정적인 표현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궁지에 몰린 문빠를 위한 변명을 하려 합니다. 완전한 이해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맥락'에서 우리의 행동이 시작됐는지 설명하고 싶습니다.
여러 전문가가 분석했듯이 가장 큰 이유는 고(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채 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다수의 문빠는 '고 노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를 극단으로 내몰은 상황과 세력을 저지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겠죠. 이런 부채 의식은 고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문 대통령에게 투영됩니다. '고 노 전 대통령에게 진 빚을 갚겠다'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요. '와신상담'이라고 해야 할까요. 9년간 칼을 갈던 우리는 그렇게 적극적 행동에 나섰습니다.
문자 항의도 그래요. 적극적인 정치참여는 주권의식 향상의 방증이기도 합니다. 높은 교육수준, IT 강국 등의 요인도 영향을 미쳤을 거고요. 또 정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단순히 문빠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문빠라는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은 언론 아닌가요. 일종의 '팬덤'을 굳이 병적 현상으로 볼 필요는 없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이가 공격을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때 못 참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텐데요.
'편 가르기'도 한몫했죠. 우리나라 이념 지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보수 대 진보로 서로를 가르는 것입니다. 실제 내부를 들여다보면 유사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와 진보 지지자들을 편 가르기로 이해하는 방식이 강해요. 그게 편하고 자극적이니까요.
물론 문빠들의 행동은 자정이 필요합니다. 인정해요. 현재 문빠들 사이에서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임으로써 강화되는 '군중심리'가 있다고 봐요. 상대편을 비판하면서 내부 응집력은 더 높아지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외부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어요. 지나친 편 가르기는 피해의식이 강할수록 심해지죠. 또다시 피해보지 않으려는 일종의 방어기제이니까요. 조직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때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이 작동하고, 이러한 본능은 때때로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요.
저를 비롯한 문빠는 알겁니다. 근거와 책임이 결여된 행동은 우리가 지키려는 문 대통령을 오히려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요. 하지만 우리의 집단행동이 불필요한 사회 갈등 야기로 일견 비춰지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문빠도 결국에는 단합된 사회,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은 국민이니까요.
자문=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이창재 영화 '노무현입니다' 감독·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부교수,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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