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첫 마중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전주역 앞 백제대로의 일대 상권이 들썩이고 있다. 좋은 소식으로 시끌벅적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아 상인들의 수심이 깊다.
전주시는 전주역 앞 도로가 휑하다는 이유로 ‘첫 마중길’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전북대에 닿는 850m 도로 한 가운데에 보행길을 까는 60억 규모 공사다. 8차선 차로는 6차선으로, 폭 10m 넓이인 양쪽 인도는 2.5m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중앙 도보길에 나무를 심고, 푸드 트럭을 유치한다고 한다. 지난해 4월 착공했고 지금은 마무리단계다.
통상적으로 낙후된 곳이 재개발되면 주변 땅값이 오르고 기존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둥지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난다. 가까운 예로 전주 한옥마을 조성 과정에서 임대료가 상승하자 일대 예술인과 임차인이 내쫓긴 경험이 있다.
마중길 인근 상가번영회는 이러한 부작용을 막겠다고 상생발전협의회를 만들었다. 한쪽에는 사무실까지 차렸다. 이들은 상인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전주시에 전달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그런 적 없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특히 공사를 반대했던 일부 상인들은 “철저히 배제당하고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실제 이 협의체는 구성원에서부터 협의 방식까지 어느 하나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 주민, 전문가 등 26명으로 구성됐다는 상생협의회, 정작 상인들은 구성원이 누구이고 어떤 논의를 통해 시청과 조율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증언했다.
상생협의회는 속전속결로 조직됐다. 지난해 7월20일 우아1동 상가번영회가 돌연 창립식을 했는데, 10여일 뒤 마중길 상생협의회 협약이 체결됐다. 9일 만의 쾌속 진행인데 이 모든 자리에 김승수 전주시장이 함께했다. 마중길 조성은 김 시장의 임기 내 숙원사업이다.
김 시장은 공식석상에서 상가번영회장겸 상생협의회장과 수차례 마주쳤다. 그는 우아1동에서 오랜 시간 부동산 중개업을 한 사업자로 알려져 있다.
복수의 상인들은 ‘상생’이라는 포장 뒤에 지주의 배를 불리는 논리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중길 프리미엄’ 소식에 일부 낡은 건물이 철거되고 새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 주유소는 마중길 조성으로 자동차 진입로가 막혀 결국 철거됐다. 그 자리에 고급 호텔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전주 유명 프렌차이즈 음식점을 운영 중인 점장 A씨는 “공사를 시작해놓고 협의회를 만들어서 주민 의견을 청취한다는데, 공사 가부를 먼저 물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협의회에) 들어가 있는 분들이 누군지도 잘 모른다. 전주시와 적극적인 협의를 한다고 광고하는데 실제로 의견을 내 본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아울러 A씨는 지난해부터 마중길 공사로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고 했다. 그는 “인도를 깎고 곡선길을 만들면서 주차공간이 없어졌다. 이후 도로변 불법단속을 줄기차게 하는데 손님들이 불안해서 차를 못 댄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얼마나 더 큰 피해가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16년 음식점 외길 인생 B씨 “자본주의 논리 앞에 버틸 재간 없어”
“내가 16년 동안 여기서 감자탕 한 가지를 가지고 지금까지 살았다. 이런 큰 공사 있으면 그래도 얘기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시를 위해 원주민들이 뒤로 물러서길 바라는 거 같다. 의견을 전혀 안 들어주고 일을 진행하니깐 불안할 수밖에 없다”
백제대로 상권에서 16년째 감자탕집을 운영 중인 B씨는 “걱정을 안 하려야 그럴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가 있는 곳이 생기면 자연히 돈이 들어오는 거 아니겠는가. 자본주의 순리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주시나 상생협의회는 임대료 안 올리겠다고 하는데, 그게 이상적인 바람이지 부동산 업자들이 가만 놔두겠나? 이미 땅값이 올랐다. 부동산 업자들이 벌써부터 대형 프렌차이즈에 찌르고 다니고 있다. 이걸 우리가 무슨 수로 막느냐. 들리는 얘기 만해도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고 전했다.
B씨는 전주시에서 마중길 일대 임대료 인상을 규제하는 공문을 건물주들에게 보낸 것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도 “그게 영속적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땅값이 오르면 결국 역차별 얘기가 나올 거다. 서울 홍대가 그랬고 한옥마을도 그랬다. 최근엔 도청 신시가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상황이 되면 돈이 밀려들어오고, 나갈 사람은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음식점 7년 C씨 “찬성자들 결집력 완강, 반대자들은 소극적”
백제로에서 7년 가까이 음식점을 운영 중인 C씨는 “전주시에서 교묘하게 머리를 써서 ‘다수의 의견 논리’를 펴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C씨는 “전주시가 찬성자들을 결집시켜 기구를 만들어주고, 별의별 권한을 다 줬다“면서 ”그러나 반대자가 말할 수 있는 창구는 전혀 없다. 반대자끼리 합의해서 장사 안 하고 다 비워버린다든지 그런 행동으로 저항해야하는데 쉽지 않다. 간판들이 자주 바뀌고 하니깐 주변 업체 사장님들 얼굴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 중이라고 하는 게 맞다. 전주시가 일부로 그런 걸 유도하는 게 아닌가 싶다. 누가 가족을 뒤에 두고 홀로 앞장서려 하겠는가. 노동단체도 없고 협동조합 같은 것도 없다. 그렇다고 전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나서지 못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오랜 세월 이곳을 터전으로 삼아온 이들이 있다. 무엇이 지역을 행복하게 하는 일인지 전주시가 깊이 헤아렸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쿠키뉴스는 수차례 전주시에 전화를 걸어 해명을 요구했으나 회의·출장 등의 이유로 담당자와 통화할 수 없었다. 다른 부서 직원에게 메모를 남기는 방식으로 자료를 요구했으나 마찬가지로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상생협의회 역시 접촉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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