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전미옥 기자] “이 시간에도 비후성 심근병증 때문에 원인 모르게 급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500명 당 1명이라는 확률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홍그루 신촌 연세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의 말이다.
비후성 심근병증은 종종 갑작스러운 돌연사의 원인으로 꼽히는 희귀 난치성 유전질환이다. 심장 근육이 비후해져(두꺼워져) 심부전, 돌연사 등 증상을 일으키며, 비정상적으로 심장근육이 점차 두꺼워지도록 하는 특정 유전자 보유자들에게서 나타난다.
심장은 수많은 근육 세포들로 구성돼 있다. 심장 내에 있는 이 세포들이 모여서 근육 줄을 형성하고, 근육 줄이 심장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만든다. 정상인이라면 수축-이완운동을 1분에 최소 60회 이상씩 평생 반복하게 된다.
홍 교수는 “근육 세포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액틴, 마이오신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각각의 부분이 유전자 돌연변이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정상적인 심장 근육은 평균 7~8mm, 두꺼운 경우에도 10mm를 넘기지 않지만 심장 근육의 두께가 1.3cm 이상일 경우 비후성 심근병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비후성 심근병증이 있으면서 과격한 운동을 하거나 과음할 경우, 악성 부정맥이 있는 경우, 그리고 젊은 사람일수록 급사 위험이 높아진다. 실제로 젊은 운동선수들의 사망원인 중 약 30~35%가 비후성 심근병증으로 알려져 있다.
홍 교수는 “2003년 경기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비비안 푀 전 카메룬 국가대표 선수, 2004년 경기 중 사망한 미클로스 페헤르 전 헝가리 국가대표 선수 등 축구 경기 중 갑자기 사망한 이 선수들의 급사한 이유가 바로 비후성 심근병증이었다”며 “격한 운동이나 스트레스, 음주 등이 급사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젊을수록 급사의 위험이 더 높다”고 말했다.
비후성 심근병증이 문제가 되는 지점은 특별한 증상이 없다가 돌연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조기발견이 된다면 고혈압 등 만성질환과 같이 평생 관리하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홍 교수는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의 1년 내 급사 위험은 1% 미만”이라며 “심장마비와 심폐소생술 경험이 있거나 가족 중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 또는 급사한 사람이 있는 경우, 별다른 원인 없이 혼절한 경험이 있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유전자 스크리닝 검사를 받아보기를 권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심근이 두꺼워진다고 해서 모두 비후성 심근병증은 아니다. 정상적인 사람도 운동을 많이 하면 심근이 두꺼워질 수 있고, 고혈압, 심장판막질환, 신장 이상 등 질환도 심근 두께에 영향을 준다. 또 파브리병의 경우도 비후성 심근병증으로 오인하기 쉽다. 파브리병은 심장의 근육이 두꺼워지는 것이 아니라 근육 세포 내에 이상 물질이 축적돼 심장 세포가 커지는 것으로 비후성 심근병증과는 다르다. 파브리병이라면 리소좀에 쌓이는 물질들이 더 이상 축적되지 않도록 약물을 통해 치료할 수 있지만, 비후성 심근병증은 두꺼워진 심장근육을 되돌리거나 진행을 막을 수는 없다.
홍 교수는 “비후성 심근병증의 약물치료 효과가 더 이상 없게되면 대동맥으로 나가는 길을 막는 근육을 수술적으로 잘라내는 근절제술을 고려할 수 있다. 말기 심부전증으로 진행되면 심장이식을 고려할 수도 있다. 또 급사의 위험이 높다고 판단될 경우 대비책으로 삽입형 제세동기 수술을 받을 수 있다”며 “여러 조건을 살펴본 결과 급사의 위험성이 낮고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그 이후부터는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인 검진을 받으며 관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