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리는 최과장의 지시로 핸드드립 기구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중이다. 김부장이 외국 출장에서 사온 귀한 커피라며 아침회의 시간에 내려오라고 부탁한 것이다.
"빨리 커피 내려서 가져오시랍니다." 인턴이 전해주는 소리에 잠시 망설이다가 뜸도 들이지 않고 마구 물을 부어버렸다.
사실 이대리는 근처 학원에서 핸드드립 커피 과정을 수강하는 중이다. 배울 때 분명히 추출전에 뜸을 들이라고 선생님이 알려줬는데 괜찮을까 싶었지만, 빨리 커피 내리고 회의에 참석하라는 재촉에 모든 과정을 생략해버린 것이다.
커피를 가지고 회의실에 들어가니 이미 회의는 진행 중에 있었다.부장과 과장 자리에 먼저 커피 잔을 내려놓고 다른 직원들에게도 나눠주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던 김부장이 갑자기 얼굴을 찌푸렸다.
"최과장! 이게 내가 준 커피가 맞아요? 그 커피가 아닌 것같은데..." 일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맞습니다.부장님.분명히 그 커피입니다."
다급해진 최과장은 이대리에게 화살을 돌렸다.
"이대리! 커피 배웠다며? 제대로 내린 것 맞는거야? 왜 이렇게 커피가 싱겁고 맛이 없지?"
사실 이대리가 사용한 커피원두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유는 한가지 너무 급하게 물을 부어 추출했다는 것이다.
회의시간에 쫒긴 이대리가 모든 과정을 생략한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아무리 좋은 커피도 뜸들이기를 생략하고 급하게 내리면 맛이 없다. 밥도 뜸들이지 않으면 맛이 없듯 좋은 향과 맛은 뜸을 들인 후에 나온다. 추출 전에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가루의 세포가 부풀어 오르게 해야 커피가루 속의 아로마가 제대로 추출 될 수 있게 된다.
사람좋은 김부장이 웃으며 "이대리, 다음에는 더 맛있게 내려와요~"했지만 제대로 챙피당한 이대리는 앞으로는 아무리 재촉해도 배운대로 할꺼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달라고 하면 안 되듯 아무리 급해도 절차와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커피나 세상이치나 똑같다. 급하게 먹는 떡이 체하고 급하게 내린 커피는 맛 없다.
글=최우성(인덕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 본부장, 웨슬리커피 LAB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