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창원=강승우 기자] 지난 20일 경남 창원의 STX조선해양 조선소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하청업체 노동자 4명이 숨진 사건의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위험의 외주화’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해경 수사본부는 이번 폭발 사고의 원인 규명과 함께 이들의 정확한 고용 관계를 밝히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2차 하청업체 대표 알고 보니 1차 하청업체 직원
이 사고로 숨진 4명은 애초 알려진 STX조선해양의 1차 하청업체가 아닌 2차 하청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해경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2차 하청업체 대표 A(58)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그런데 법인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2차 하청업체의 주소지와 1차 하청업체의 주소지가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조사 과정에서 1차 하청업체 직원으로 파악됐다.
해경은 또 사망자들이 2차 하청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 4대 보험은 1차 하청업체에서 가입했다고 밝혔다.
숨진 노동자들의 정확한 소속이 어디인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해경은 지난 22일 압수수색 과정에서 1차 하청업체 사무실에서 2차 하청업체 관련 자료도 확보했다고 했다.
이에 해경 수사본부는 1차 하청업체가 일종의 자회사 개념으로 2차 하청업체를 만들어 재하도급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해경은 이런 점 등을 토대로 숨진 노동자들이 사실상 1차 하청업체에 소속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업계 만연한 ‘위험의 외주화’ 실체가 드러나
노동계는 이번 사고로 조선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위험의 외주화’ 실체가 확연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다단계 하청구조로 내려갈수록 공사 계약금액(단가)은 낮아지게 되고, 이는 곧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이어져 사고에 노출될 우려가 높다.
그러나 비용절감과 책임 전가 등을 이유로 일선 현장에는 이런 다단계 하청구조가 만연한 실태다.
특히 하나의 작업이 끝나면 다른 작업장으로 옮겨 다니는 ‘물량팀’은 이 가운데서도 사실상 최하층에 속한다.
숨진 4명의 노동자 역시 이 물량팀에 소속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안전장비도 지급되지 않았다.
관련법에 따라 밀폐 공간에서 작업했던 이들에게는 ‘송기마스크’가 지급됐어야 했다.
하지만 실제 이들은 도장 작업 때 착용을 금지하고 있는 방독마스크를 쓰고 작업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계는 이를 두고 원청업체의 무리한 납기일 단축 요구와 단가 후려치기 등에 정작 안전은 뒷전으로 밀린 게 이번 사고가 발생한 또 다른 배경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노동계와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관계자는 “비용 절감과 더불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전가할 목적으로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불법 다단계 구조가 만연하다”며 “하지만 건설업종에서는 다단계 하도급이 불법이지만 조선업은 그렇지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를 계기로 조선업종 전반에 걸친 전수조사와 함께 법적으로 이런 기형적인 고용 구조가 더는 양산되지 않도록 강력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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