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알코올 중독(알코올의존증)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신다면, 한 번 술을 마시면 중간에 멈출 수 없게 된다면 당신도 알코올 중독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치료시기가 늦어질 수록 회복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또 알코올중독으로 온 가족이 고통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실제로 많은 중독 환자와 가족들이 술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쿠키뉴스는 총 8회에 걸쳐 알코올중독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매주 목요일 DAUM 스토리펀딩에 함께 연재됩니다.(편집자주)
[쿠키뉴스=전미옥 기자] #알코올의존증 환자 A씨는 취해있지 않으면 극심한 불안이 엄습했다.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집에서 술만 마신지 며칠째, 벌벌 떨면서 술을 사달라는 딸의 모습은 곧 죽을 사람 같았다. 어머니는 결국 술을 사러 집을 나섰다. 중풍이 있어 어기적거리며 잘 걷지 못하면서도 어머니는 소주와 안주를 몇 가지를 더해 술상을 냈다.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는 멀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어제도 그저께도 같은 생각으로 취해 잠들었다.
다사랑중앙병원 알코올중독전문상담사 오지연씨의 이야기다. 그날 방을 나서던 어머니의 긴 한숨을 오 씨는 기억한다. 그는 ‘나 자신이 가장 싫었던 모습이자 불쌍했던 모습’이라고 했다.
오 상담사는 알코올의존증 환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9년째 단주 중인 알코올의존증 회복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와 가족들의 회복에 앞장서고 있다
◇이 병이 정말 낫기는 합니까?
알코올의존증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의지’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말이다. 오늘은 술을 안 먹고 버티더라도 내일은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다. 1~2년 술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단주에 성공하더라도 몇 년 뒤 나도 모르는 불행이 다가온다면 그때도 정말 술에 손대지 않을 수 있을까. 알코올의존증 회복자들이 맞닥뜨리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과연 알코올의존증이 나을 수 있는 병인가. 환자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다. 그 때마다 오 상담사는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술을 먹지 않고 회복하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병”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환자들의 말처럼 알코올의존증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오 상담사도 단주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친구들하고 동창회를 갔는데 친구들이 마시는 술이 너무 많이 먹고 싶었어요. 그 당시 4년을 넘게 술을 안 먹었기 때문에 저는 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조금 마셨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더라고요.”
동창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소주 6병을 샀다. 그리고 또 다시 예전처럼 혼자 방 안에서 취할 때까지 술 먹기를 반복했다. 4년의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리곤 무서운 금단이 왔다.
“칼을 들고 어떤 남자가 나를 죽이겠다고 계속 쫒아오는 거예요. 금단현상 중에 환청과 환시가 있는데 저는 두 개가 같이 온 거죠. 너무 무서운 악몽 때문에 물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어요.”
어쩌면 악몽 같던 금단현상은 회복 과정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상담공부를 시작하게 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때 주변에 있던 분들이 상담을 받아보면 어떻겠느냐 제의했고, 저는 개인 상담을 받기시작했어요. 상담을 받으면서 저희 아버지가 왜 그렇게 술을 먹었는지 이해가 됐어요. 엄마가 왜 그렇게 저를 때렸는지도 이해됐어요. 그러면서 점점 나를 이해하게 됐죠.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학교부터 들어가서 상담심리학 공부를 했어요. 그러면서 상담사가 된 것 같아요.”
◇함께하는 행복, 이겨내는 힘
“저희는 개방병동 프로그램 중에 외박과 외출이 가능한 사회기술훈련이 있어요. 외박, 외출을 나가면 유혹이 강한데도 술하고 싸워가면서 이겨내고 돌아오는 거죠. 이런 훈련을 통해서 술을 극복하고 퇴원하실 때, 이들이 술을 안 먹고 외래를 오고, 술 안 먹고 자조모임에 왔을 때 굉장히 행복합니다.”
하루 하루 건강하게 회복하는 환자들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고 오 상담사는 말한다. 그의 목표는 ‘술을 안 먹고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회복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회복의 길이 쉽지 않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저는 오늘 같이 비가오거나 습도가 많은 날은 굉장히 술을 먹고 싶어요. 하지만 참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조금은 생겼거든요 그리고 회복하면 배웠던 대로 저는 계속 A.A.(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자조모임에 참여하고 있고 오늘도 모임을 갈 겁니다.”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평생 나눔과 봉사로 살던 사랑스러운 여인, 여기에 잠들다.’ 오 상담사가 꿈꾸는 자신의 묘비명이다. 그는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이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회복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제 미래의 포부”라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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