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알코올 중독(알코올의존증)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신다면, 한 번 술을 마시면 중간에 멈출 수 없게 된다면 당신도 알코올 중독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치료시기가 늦어질 수록 회복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또 알코올중독으로 온 가족이 고통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실제로 많은 중독 환자와 가족들이 술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쿠키뉴스는 총 8회에 걸쳐 알코올중독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매주 목요일 DAUM 스토리펀딩에 함께 연재됩니다.(편집자주)
[쿠키뉴스=전미옥 기자] “빨리 도망가야지 생각했어요. 개방병동에서는 외출시간을 주거든요. 근데 같은 병실을 쓰던 퇴원이 한 열흘 남은 동료가 자기는 퇴원이 두렵다고 하대요. 속으로 미친놈이라고 했죠.”
알코올중독 회복자인 김상호씨(가명·58)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눈빛이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난 5월 알코올중독전문병원을 퇴원하고 회복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회복과정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면회 온 아내에게 빨리 좀 퇴원시켜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세 달 (치료)과정을 버티라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업할 때는 사업 핑계도 대고, 술 끊겠다고 다짐도 했었는데 이젠 핑계거리가 없더라고요. 이미 도망가본 경험이 여러 번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진짜 변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난 10년여 동안 알코올문제로 고통받아왔지만, 적극적으로 치료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병원 자체 A.A.모임에 처음 참석했는데 알코올중독자 출신 보호사 선생님이 자기 경험담을 이야기하셨어요. 퇴근길에 술에 대한 갈망이 심하게 와서 술 대신 페트병 콜라를 사마시면서 간신히 충동을 극복했다는 이야기인데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 분은 술에 대한 경각심을 매일 느끼는 분인데 그런 사람이 그럴 정도면 나는 더 심하겠다. 내 생활 속에는 더 유혹이 많은데 어쩌지...그때 도망가려던 마음을 접었어요.”
"용산 김입니다.” “마포 황입니다.” “대방 김입니다.”
A.A.에는 알코올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단, 익명으로 참석하는 등 A.A.에서 정한 몇 가지 원칙에 따라야 한다.
“도와주려는 사람은 같은 곤란을 체험한 일이 있는 사람일 것.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것. 태도에서 정말로 해결책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할 것, 혼자 성인인 체 하려는 자세가 아닐 것.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진지하고 성의있는 바람만을 가지고 있을 것. 가입비나 사례금이 필요없고 마음에 딴 속셈이 없을 것. 누구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좋고 참으며 들어야 할 강의도 없어야 할 것.” _A.A.의 기본 원칙(출처: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전문가들은 알코올의존증 치료는 신체적인 치료와 정신적인 치료, 가족치료, 사회적인 치료, 그리고 영적인 치료 등 5가지 부문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중에서 A.A.는 특히 사회적인 면과 영적인 면에서 도움을 준다.
우보라 다사랑중앙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알코올중독 치료는 단주뿐만 아니라 온전한 자아, 생활, 관계가 회복될 때 진정한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며 “사람은 공동체 속에서 생존하고 성장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동지들을 만나 희망을 나누고 서로의 경험과 격려를 주고받는 자조모임이 회복의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영적인 건강도 알코올중독 회복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우 원장은 “알콜의존증 환자분들이 믿음을 가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며 “믿음이 있을 때 희망을 꿈꿀 수 있고, 믿음과 희망이 있을 때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영역까지 우리에게 힘을 주고 의지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한 미래와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에 있어서 신에게 기대는 것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기 때문에 A.A.내에서도 믿음을 가지는 것을 권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강요되는 것은 아니고 개인마다 자신이 믿는 신이 있으면 좋겠다고 권장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믿음, 중독을 이겨내는 또 다른 힘
A.A.에서는 영적인 체험을 권장한다. 우 원장의 말처럼 신에 대한 믿음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순간에 힘을 주기 때문이다. A.A.에서는 특정 종교를 권하지는 않지만, 되도록 종교를 통해 영적인 치유를 받는 것을 권한다. A.A.는 이러한 영적인 존재를 통틀어 ‘위대한 힘’이라고 부른다. 상호씨도 ‘위대한 힘’을 체험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모임 장소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꽉 차있는 데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른 나라에 있다가 우리 동포들을 만나는 느낌. 반갑기도하고 고맙고 또 경건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날 발표된 내용들이 두드러진 게 없었는데도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알코올중독 치유서를 다른 분이 읽던 것을 받아서 읽는데 그 내용 중에 ‘신은 상처를 통과해 들어온다’는 글귀가 있더라고요. 빛을 아는 사람이 어둠에 감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 그걸 읽는 데 가슴이 뛰고 마음이 가득 차더라고요. 이제까지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고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제 삶은 이전과는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술을 억지로 참았다면 이제는 술에 대한 갈망, 집착에서 한 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A.A.모임과 자기 성찰을 통해서 하루하루 긍정적인 회복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부터 그는 생업이던 안경사 업무에 복귀했다. 가족들도 그의 변화에 응원을 보내고 있다. 시간적인 여유는 줄어들었지만 그는 앞으로도 A.A.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다.
“사실 이 모임은 굉장히 처절한 사람들의 모임이에요. 죽음 아니면 삶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어요. 알코올중독자의 삶은 결국 죽음이에요. 술 마시다 죽을 수 있다는 걸 경험한 사람들이죠.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나 우정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갈 유일한 힘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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