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알코올 중독(알코올의존증)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신다면, 한 번 술을 마시면 중간에 멈출 수 없게 된다면 당신도 알코올 중독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치료시기가 늦어질 수록 회복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또 알코올중독으로 온 가족이 고통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실제로 많은 중독 환자와 가족들이 술과의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쿠키뉴스는 총 8회에 걸쳐 알코올중독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매주 목요일 DAUM 스토리펀딩에 함께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병원 나가면 죽을 줄 알아.”
박화연씨(54, 가명)는 알코올중독자(알코올의존)인 남편이 무섭다. 남편의 날선 협박이 아직 귀에 생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에 입원한 남편은 입원 당시부터 줄곧 당장 퇴원시켜달라고 요구했다. 남편은 어떤 날은 회유를, 어떤 날은 협박을 하며 화연씨를 압박했다. 퇴원한 남편이 어떤 모습일지는 눈에 불 보듯 뻔했다.
남편에게는 폭력문제가 있었다. 남편이 술을 마신 날마다 집에서는 전쟁이 벌어졌다. 남편의 폭력은 화연씨와 두 남매에게 향했고, 그 끝은 가족들에 상처를 남겼다.
“술 마시고 화나는 일이 있으면 저한테 시비를 걸거나 아들이 있으면 아들한테 (스트레스를)푸는 거죠. 돌도 안 된 아기가 오줌을 쌌다고 때리고, 또 어느 날은 아들이 밥을 제대로 안 먹는다고 때리고, 재떨이나 화분을 던지면서 화를 내는 일도 있고...”
작은 손찌검부터 시작된 남편의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더불어 남편의 술 문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폭력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화연씨는 남편이 술을 좋아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술 문제가 발견되기 시작한 건 5년 전부터다. 화연씨 부부는 작은 꽃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이 없을 때마다 남편은 술을 찾아 마셨고, 전날 숙취로 가게에 늦게 출근하는 날도 점차 늘었다.
“원래는 본인이 술 마셨어도 일은 빠진 적이 없었어요. 제가 먼저 가게를 열면 되니까 늦게라도 가게에 나왔었는데 2013년도쯤 건강에도 이상이 생기고 하니까 (문제를)알게 된 거예요. 제일 심했을 때는 15일 정도 술이랑 물만 마시고 한 두 시간 자고 일어나서 또 술마시고 물마시고 하더라고요. 그때 눈을 봤는데 눈에 초점이 없고 이상하더라고요. 그 때 제가 아차한거예요. 이게 정말 심각하구나...”
화연씨의 상처는 뿌리가 깊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알코올중독 경험 때문에 오히려 남편의 알코올문제에 둔감했다고 말했다.
“제 친정아버지도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술 마시고 들어오면 항상 엄마랑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어요. 당시에 저는 엄마가 좀 참고 넘어가면 될 텐 데 왜 대꾸해서 싸울까 의아했죠. 그러면서 나중에 혹시라도 남편이 술 마시면 내버려둬야겠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한 거예요.”
다사랑중앙병원이 입원 중인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가족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환자 가족들이 겪는 문제로 ‘우울, 자살충동, 불안(48.9%)’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이어 ‘가족 해체 및 갈등(21.2%)’, ‘경제적 어려움(15.3%)’, ‘신체 건강 악화(13.9%)’ 순으로 응답했다.
알코올중독자는 적어도 네 명의 다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환자 본인뿐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가족 또한 치료가 필요하다. 환자와 함께 생활하면서 가족들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기 쉽고, 정서, 감정표현, 태도, 문제해결능력 등 생활전반에 걸쳐 문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환자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치료 인식은 부족하고, 환자 가족들조차 자신의 문제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 치료에 밀려 가족들에게는 정신적·시간적 여유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이 입원한 후 화연씨는 알코올중독자 자조모임인 알아넌(Al-Anon)과 가족교육을 통해 알코올중독이 치료받아야 할 질병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나를 돌보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화연씨의 삶은 늘 남편 위주로 돌아갔고, 본인의 감정과 욕구를 챙길 시간은 거의 없었다.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을 만나면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고, 또 도움을 청할 곳이 있다는 게 힘이 되더라고요. 제일 도움이 된 건 환자랑 가족들이랑 분리돼야 하고, 가족들도 자기 삶을 살아야 된다는 점이예요. 내가 건강해야 환자를 돌볼 수 있으니까 맞는 말 같아요. 교육받으면서 저도 책도 읽고, 기도도 하면서 마음이 불안할 때면 추스르려고 노력하게 됐고...”
때문에 화연씨는 더더욱 안타깝다. 가족들은 이제야 알코올중독이라는 병을 이해하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남편은 아직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화연씨는 두렵다면서도 남편을 믿고 싶다고 했다.
지난 5월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환자 동의없는 입원은 최초 입원 3개월 이후 일부 경우에 한해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의 소견을 받아 입원을 연장할 수 있다. 다만 화연씨의 남편은 스스로 관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극구 퇴원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예정대로 퇴원절차를 밟게 된다.
“남편이 당신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나한테 내보내는 분노가 사실 자신에 대한 화를 표출하는 거잖아요. 이제 분노에서 벗어나 본인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남편이 다시 술을 마시고, 또 폭력적인 모습이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사실 무섭습니다.”
알코올중독은 환자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가족병이다. 환자 가족교육을 담당하는 박현순 다사랑중앙병원 전문상담사와 함께 알코올중독과 가족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Q. 환자를 입원시킨 후 가족들에게서 보이는 심리적인 문제나 특성이 있나.
첫 번째는 두려움이다. 알코올의존등의 경우 입원 형태가 환자에 의한 자발적 입원보다는 비자발적인 입원이 더 많다. 그렇다보니 환자가 퇴원한 이후 가족들에게 보이는 원망이랄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두 번째는 공동의존 증상이다. 환자들이 술에 중독되면서 술의 의존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가족들도 환자들이 음주 행동이나 말에 의해 삶이 망가지는 것을 말한다. 가족들이 심리적인 불안이나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일상을 돌보지 못하고 우선순위가 환자에게 집중돼있는 것을 말한다.
Q. 중독 치료과정 중 가족들이 특별히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있나.
환자가 보이는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병의 증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병의 증상으로 이해하려면 알코올 중독에 대한 병식, 즉 질병임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가족교육이 이 역할을 하고 있다.
Q. 치료 중 가족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은 무엇인가
환자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때 가장 힘들어한다. 가족들이 환자를 입원 시킬 때에는 치료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있다. 입원만 시키면 빠른 시간 안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환자의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이 오랜 시간동안 서서히 진행된 것처럼 환자들의 변화와 회복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내하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Q.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거나,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이 때는 어떻게 조언하는지 궁금하다
입원 전이나 퇴원한 이후 환자가 감정조절이 어려운 상태일 때 그런 사례가 종종 발생할 수 있다. 이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가족과 환자를 분리하는 일이다. 가족들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도록 조언한다. 환자가 안정을 찾은 이후에는 자신이 한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한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