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투신’ 박종익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인터뷰] ‘투신’ 박종익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기사승인 2017-10-07 05:00:00

‘투신’ 박종익에게 2017년은 많은 걸 얻은 한 해다. 1년 만에 프로 무대를 다시 밟았고, 2시즌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이란 성과를 만들어냈다. 시즌을 치르는 동안 그에 대한 리그 오브 레전드 팬들의 평가는 ‘한계가 뚜렷한 선수’에서 ‘만능 서포터’로 180° 바뀌었다. 이제 박종익이 지키고 있는 아프리카 프릭스의 바텀은 팀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강점이다.

지난 9월27일 경기도 일산 아프리카 숙소 근방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숙소에 복귀한지는 겨우 보름이 지났다. 오전 연습을 마치고 나온 박종익은 “아쉬움과 즐거움이 공존했던 한 해였다”고 아프리카에서의 첫 시즌을 천천히 회상해나갔다.

“저한테는 과분한 한 해였던 것 같아요. 1년을 쉬었고, 그렇다고 또 그 전에 대단한 커리어를 쌓아둔 것도 아니었잖아요. 그리고 복귀 첫 시즌이었던 스프링 스플릿은 기대감에 비해 부족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걸 서머 스플릿에서 메우기도 했으니 아쉬움과 즐거움이 공존했던 한 해였네요”

박종익은 지난 2016년 시즌 시작을 앞두고 자신의 프로게이머 커리어에 쉼표를 찍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인크레더블 미라클(現 롱주 게이밍)에서 거진 2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던 참이었다. 그리고 지난 12월 아프리카 프릭스에 입단하면서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그동안 해외에서 오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박종익은 한국 롤챔스를 자신의 복귀 터전으로 결정했다. 그는 왜 한국에서 다시 커리어를 이어나가기로 결심했을까.

“복귀하기 위해 팀을 물색하던 중 해외 팀에서도 연락이 왔었어요. 실제로 계약도 어느 정도는 진행이 됐었고요. 하지만 아프리카 프릭스 측에서 저를 많이 원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한국 팀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요. 저는 옛 친정팀인 롱주 게이밍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잖아요. 그대로 해외로 떠난다면 한국에서 실패하고 도망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성적을 내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죠”

그가 말한 ‘명예회복’은 이번 아프리카 멤버 전원을 결집시킨 키워드이기도 했다. 이들 모두 실추됐던 자존심을 원상복구하고 싶은 의지가 있었다. 혹은 홀로 설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함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프리카는 스프링·서머 스플릿 모두 5위를 차지했다. 2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은 성과라면 성과였지만, 조금 더 좋은 성적을 노려볼 수 있었던 경기력이었기에 만족과 아쉬움이 공존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롱주에 있을 땐 승강전에 자주 가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위태위태한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스프링 시즌 5위를 기록했을 땐 승강전 안 간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희 팀원들은 그렇지가 않잖아요. 롤챔스 우승했던 선수들도 많고, 다들 커리어도 좋으니까요. 같은 팀원인 제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모순 같더라고요. 그래서 서머 땐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열심히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또 5위가 돼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요”

박종익은 지난 2번의 시즌을 두고 “완벽한 상승곡선을 그렸다”고 평가했다.

“밑바닥 가까이 갔던 적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잘했던 적도 있었어요. 1년 동안 많은 경험을 했네요. 아무래도 올 해 마지막 경기였던 삼성 갤럭시와의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선발전 2차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일 아쉬웠던 순간이었고, 매판 열심히 임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발악하다시피 했던 경기였거든요”

이들은 삼성에게 세트스코어 2대3으로 패해 롤드컵 진출 자격을 상실했다. 이들을 꺾은 삼성 갤럭시는 이어지는 최종전에서 kt 롤스터까지 잡아내면서 롤드컵에 진출했다.

1·2세트를 쉽게 이긴 뒤 3·4·5세트를 내리 졌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시즌 중에도 풀세트 경기가 많이 나왔어요. 내부적으로도 이 징크스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고요. 정규시즌에는 풀세트를 치르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나 거부감은 없었어요. 그런데 확실히 ‘승승패패패’와 ‘승패승’은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불안감이 엄습했어요”

박종익은 “매 순간이 새로웠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올 시즌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스프링 스플릿 때는 바텀 파트너 ‘크레이머’ 하종훈과 함께 ‘아프리카의 약점’으로 평가받았지만, 서머 스플릿에 들어서면서는 물오른 기량을 뽐내며 팀의 핵심 전력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급성장에 “비결은 없다”고 전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스프링 때 정말 열심히 연습하면 다음 시즌에 성과가 나온다고요. 사람인지라 연습했던 걸 대회에서 발휘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이제 다음 시즌엔 서머 때 연습한 결과물이 나올 테니 더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원거리 딜러 하종훈의 기량 상승도 그에 못지않았다. 한때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그였지만, 서머 스플릿엔 ‘리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한 기량의 원거리 딜러’란 평가를 받았다.

“바텀 듀오는 둘이서 하나라고 표현하잖아요. 하나가 되려면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피드백에 감정 상하는 일이 없어야 해요. 같이 놀 땐 놀더라도, 게임에서는 ‘이땐 이러면 안 됐다’ 말해야 하는 것 같아요. 공과 사를 구분하는 거죠. 그런데 이게 말하는 입장에선 쉬워도 들을 땐 힘들거든요. 서머 땐 그런 부분에서 한층 더 성장했던 것 같아요”

최연성 감독 밑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면서 생각의 폭도 더 넓어졌다.

“최연성 감독님은 스타크래프트에서도 유명하셨던 지도자잖아요. 소문에 따르면 엄격하고 무서우실 줄 알았는데 저희가 실제로 겪어본 감독님은 좀 달랐어요. 친절하시고, 팀 분위기가 다운되면 장난도 많이 쳐주셨어요. 전체적으로 팀의 텐션 업&다운을 잘 조절해주신 것 같아요”

박종익은 최 감독의 치밀함과 개방적인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감독님께서 자주 쓰시는 표현 중에 ‘짼다’는 말이 있어요.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안 해서 잘 모르겠지만, 전략 싸움은 가위바위보라고들 하더라고요. 상대가 뭘 낼지 알면 우리가 필승법을 준비해갈 수 있다는 거죠. 늘 ‘짼다’를 강조하셔요. 참신한 밴픽이나 전략에 대해서도 상의를 많이 했어요. 새로운 걸 쓰는 건 항상 리스크가 커요. 경기에서 패배하면 ‘그것 때문에 졌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안 좋은 인식이 박히거든요. 그래도 감독님께선 저희를 믿어주신 적이 많아요”

‘향로메타’에 발맞춰 나온 원거리 딜러의 ‘고대유물 방패(타곤산)’ 구매 전략도 이 과정에서 파생됐다. 여기엔 특히 원거리 딜러 ‘크레이머’ 하종훈이 한몫했다.

“아이템 ‘불타는 향로’를 빨리 구매하기 위해 골드 수급 룬도 껴보고, 제가 CS도 먹어보고 별 걸 다 해봤어요. 그런 과정에서 찾아낸 게 ‘고대유물 방패’ 스타트였죠. 종훈이가 그런 걸 굉장히 잘 찾아내거거든요”

박종익은 자신보다 1살 어린 바텀 파트너에게 “존경한다”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썼다.

“진의 첫 아이템으로 ‘롱소드 3포션’이 한창 유행할 때 종훈인 ‘신발 4포션’을 찾아냈어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이 있는 친구예요. 저와 감독님은 종훈이의 그런 면을 높게 평가해요. 다른 팀원들은 ‘그런 거 그만 사’ ‘졌으면 너 때문이었어’ 웃으며 말하지만, 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참신함이라는 면에 있어선 박종익도 밀리지 않는다. 과거 마오카이, 이렐리아 서포터 등을 선보이기도 했던 그다. 올해도 누누, 갈리오, 케넨, 카밀 등 다양한 챔피언을 서포터로 활용하며 시청자들에게 다채로운 즐거움을 줬다.

“비주류 챔피언은 상대방 입장에서 만나보지 못했다는 것부터가 강점이에요. 그거 하나로 ‘1인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신 ‘조커픽’은 1번 썼을 때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게 맞아요. 충분한 연습을 했더라도 대회에서는 짜인 대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하지만 전 그런 픽(비주류 챔피언)이 늘 옳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검증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대회에서 사용했던 거예요”

박종익은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보다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더 높은 곳을 바라봐도 될 것 같아요. 목표가 생겼기 때문에 그걸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할 계획이에요. 더 많은 응원과 기대를 걸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는 끝으로 자신의 작은 삼촌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고 했다.

“저는 작은 삼촌한테서 게임을 배웠어요.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서 친형제처럼 지냈거든요. 그런데 가끔 저한테 게임을 가르쳐준 걸 후회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프로게이머가 안정적인 직업과는 거리가 있으니까요. 삼촌에게 ‘후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네요. 오는 11월에 결혼을 하시는데 축하한다고, 곧 뵙겠다고 전하고 싶어요”

윤민섭 기자 yoonminseop@kukinews.com

윤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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