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말하다③] 도박중독, 늘어나는 빚에도 끊기 힘든 이유는?

[중독을말하다③] 도박중독, 늘어나는 빚에도 끊기 힘든 이유는?

"도박중독은 질병…하면 할수록 쾌락회로 강화돼"

기사승인 2017-10-08 04:00:00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대학생 김소영(21)씨의 말이다. 소영씨의 아버지는 도박중독자다. 아버지의 도박 때문에 가족들은 벌써 14년 째 빚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의 도박문제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모님의 결혼 10주년 기념일날 집으로 날아온 독촉장이 그 시작이었다. 소영씨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그는 “독촉장이 온 이후 모르는 번호로 돈을 갚으라는 전화가 오고, 집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소영씨의 아버지는 한 상갓집에서 직장동료들과 고스톱과 카드게임을 한 것을 시작으로 급속도로 도박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2년 전, 가족들이 오랜 도박 빚을 거의 갚아갈 무렵, 다시 아버지의 도박문제가 드러났다. 그 동안 도박을 끊고 회복한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가 차곡차곡 도박 빚을 쌓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빚은 10년 전보다 3배 많은 액수였다. 김씨는 “누구보다 다정했던 아빠가 집 밖에서 사채를 써가면서까지 도박을 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도박은 결과가 불확실한 사건에 돈이나 가치를 거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도박에는 경마, 경륜, 경정, 카지노, 복권, 소싸움, 주식거래, 인터넷 도박 등 각종 돈내기 게임이 포함된다. 도박을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지만, 자칫 중독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도박중독은 행위중독을 병으로 인정한 첫 사례다. 중독은 크게 알코올, 약물에 의존하는 ‘물질중독’과 특정행동에 의존하는 ‘행위중독’ 두 가지로 나눈다. 모두 내성과 갈망, 금단증상이 나타나는 질병이다.

노대영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전까지 행위중독은 알코올·약물 등 물질중독과 동등하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관련 연구가 쌓이면서 지난 2013년 국제 진단평가기준에 포함하고, 중독질환으로 인정했다. 의학적으로는 ‘병적도박’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도박중독은 병이기 때문에 쉽게 끊지 못한다. 문제는 환자 스스로 병으로 인정하는 ‘병식’을 갖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노 교수는 “병적도박은 사람의 의지나 설득으로는 이겨내기 어렵다”며 “그럼에도 환자 스스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고 이해시키기도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은 술 때문에 몸에 문제가 나타나는데 도박은 몸은 멀쩡하니 병이라는 생각 자체를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정말 심각한 상태가 돼서야 가족들 손에 이끌려 치료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도박 때문에 본인, 가족 및 대인관계의 갈등과 재정적·사회적·법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로 도박행위를 조절하지 못하고 지속해서 도박을 하게 되는 것’을 도박중독으로 정의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의 한계를 넘어서 반복적으로 도박을 한다면 도박중독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청소년들도 도박중독 위험에서 안전하지 못하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서울남부센터 예방과 이슬행 상담사는 “도박문제 내담자들의 연령대는 30~40대가 가장 많고, 60대 이상보다는 10대 청소년이 더 많다. 청소년들은 SNS나 또래집단을 통해 쉽게 불법도박에 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도박중독은 경제적인 피해로 직결돼있고 도박에 빠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편이다. 한 중학생이 천만 원가량 배팅한 경우도 봤다, 많은 경우 어른들의 관리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에 잠재적인 중독 청소년들은 통계치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든 중독은 이어진다. 알코올 중독인 사람이 도박에 손을 대기 쉽고, 도박 중독인 사람이 약물중독에 빠지기 쉽다. 안타깝게도 중독에 대한 취약성은 ‘타고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중독은 타고난 성향의 영향을 받는다. 짜릿한 것을 추구하고, 욕구 조절능력이 떨어지는 분들이면 도박장애로 이어질 수 있고, 어린 시절 도박 등 중독요소가 있는 환경에 오래 노출되거나, 외상, 부모로 인한 상처 등이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중독 성향이 타고난 것이라면, 미리 알고 대비할 수는 없을까. 또 반대로 중독 성향이 약하거나 중독에 강한 사람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노 교수는 “미리 알기는 어렵다”면서도 “대개 10명 중 8명은 조절하는 힘이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자만해서는 안된다. 그는 “중독 성향이 적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독 성향이 적은 사람이라고 해도 도박을 자주 접하고 탐닉하다보면 점차 쾌락회로가 강화된다”며 “도박에 있어서는 우선 자제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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