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알코올중독자 김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다. 자신이 알코올 중독(의존)임을 잊지 않으려는 다짐처럼 들렸다. 단연코 술을 끊겠다는 열망으로 모인 사람들, 여성 알코올중독 자조모임 ‘단영초’를 찾았다.
알코올중독 자조모임(A.A.)은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이 모인 자발적인 회복 공동체다. 전국에 각지에 모임이 결성돼 있으며, 중독문제가 있다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단영초는 다사랑중앙병원에 입·퇴원한 여성 회복자들의 모임이다. 이름은 ‘단주를 영원히 초심의 마음으로’의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
지난 23일 11시, 모임은 매주 이 시간 열린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자 공간이 금세 떠들썩해졌다. 이날은 12명의 회복자가 모였다.
“하나. 나의 단주 생활과 파멸 사이는 술 한 잔뿐이다.”
모임은 20가지 조항으로 이뤄진 단주지침서를 읽으면서 시작된다. 모든 중독이 그렇듯 알코올중독에는 ‘단주’가 답이다. 오랫동안 단주했더라도 단 한 잔 마신 술로 다시 중독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 모임에서는 주로 한 주간 어떻게 생활했는지, 술에 대한 갈망을 어떻게 이겨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코올중독자 진씨는 “요즘에는 어쩌다보니 술 생각을 안 했네 하면서 넘어가고 있다”며 입을 열었다.
진씨는 “얼마 전 동생한테 금단이 와서 손이 떨려 국을 코로 먹었던 이야기, 환각을 보고 간호사로 착각했던 이야기를 했다, 이게 나한테는 웃긴 이야긴데 동생은 무섭다고 하더라”며 “AA에서는 다들 공감하는 데,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는 걸 보면서 내가 알코올중독자라는 걸 자각하고 있다”고 했다. 진씨의 유쾌한 고백에 회복자들 사이에서는 쿡쿡 웃음이 새어나왔다.
알코올중독자 김씨는 “요즘 시간이 빠르다는 게 느껴진다. 술을 마셨을 때는 이 귀중한 시간을 왜 그렇게 흘려보냈는지 생각만 하면 아깝고 원통하다”며 “그래도 맑은 정신이 좋다”고 했다.
“술 없이 온전히 생활하고 있음을 깨달아요.” 알코올중독자 조씨의 말이다. 조씨는 “이사를 고민하고 있는 데 아이가 ‘어차피 엄마 맘대로 할 거 아니냐’고 하더라”며 “아이랑 대화를 하다 보니 저라는 사람이 그동안 이사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걸 깨달았다. 술 먹을 때는 나만 생각했고 아이의 맘도 헤아린 적이 없더라, 이제라도 이런 일상을 온전히 느끼고 생각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이거 마른주정인 거 같은데?”
마른주정은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치 술을 마신 것처럼 주정을 부리는 후기 금단증상을 말한다. 대개 단주를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난 후 나타난다. 이들에게는 엉뚱하거나 우스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농담으로 쓰였다.
회복자들은 평생 한 잔의 유혹을 경계하며 살아간다. 한 번 알코올의존자가 되면 죽을 때까지 알코올중독자’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모임에 나와 자신이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알코올중독 회복자들은 A.A.모임을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한다. 조씨는 “모임에 나가면 그날 하루 동안은 술을 안 먹고 버틸 수 있다”며 “여기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무나 잘 아는 곳이다. 발표를 하지 않더라도 앉아만 있어도 느껴진다. 사람들의 경험담 속에 내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알코올중독자니까 술 마시면 안 돼요. 혼자 있어도 안 되고, 도움 받아야 해요. 모임에 가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거든요. 술 안마시고 사는 삶이 나한테는 새로운 세상이에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정말 죽는 데도 마셨거든요. 거기서 건져준 곳이 모임입니다.”
단주지침서의 두 번째 조항에는 ‘모임에는 졸업장이 없다’고 명시돼있다. 모임에 빠지는 것은 나오기 싫어서가 아니라 재발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요즘 조씨는 거의 매일같이 A.A.에 나간다. 월요일은 김포모임, 화요일은 광명모임에 가는 식이다. 하루에 두 번 이상 모임에 참석하기도 한다. 이 날 단영초 모임이 끝나고 그는 오후 3시에 열리는 김포모임에 향한다고 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