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의-한-약-정, 시끄러운 소통 시작

[기자수첩] 의-한-약-정, 시끄러운 소통 시작

의-한-약-정, 시끄러운 소통 시작

기사승인 2017-12-01 00:03:00
“곪은 상처는 째야한다.”

곪을 데로 곪아 안으로 썩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인위적으로 상처를 드러내 썩은 것을 긁어내야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을 소통의 부재로 인해 관계나 일이 악화됐을 때 많이 한다.

서로에 대한 오해와 갈등, 오류를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두면 관계나 사안이 꼬일 데로 꼬여 정작 풀어야할 때 제대로 풀리지 않고, 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될 때 사태를 해소해야한다는 의미로 쓴다. 그리고 문제를 푸는 해법으로 우리는 ‘대화’를 제시한다.

고통스럽지만 대화를 통해 상처를 째듯 문제를 터놓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하고 인정해 문제를 혹은 관계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

지난 20일 경주에서 개최된 ‘한약 정책 발전을 위한 간담회’에는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한약사협회, 대한한방병원협회 등 각 직역을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각 직역의 대표들은 아프지만, 지난 20여년간 꼬일 데로 꼬인 의사와 한의사, 한약사와 약사 간의 관계를 개선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발전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실제 얼굴을 붉히며 고성을 지르고, 흥분해 논쟁이 벌였다.

간담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수년간 회의에 참석했지만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었다”며 “주제발표 시간은 물론이고 식사시간에서조차 고성과 비난이 오갔다. 한의계는 판을 엎고 가려고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논쟁의 핵심은 한의학에 대한 의료계의 오해와 잘못된 인식, 한약사와 약사 간의 시각차였다. 실제 주제발표에 나선 의협 관계자는 한의사들이 의서에 적힌 데로만 처방해야한다고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임의처방을 단속하지 않는다고 정부부처를 질타했다 곤혹을 치뤘다.

심지어 한약과 생약이라는 용어의 혼용을 두고 한약으로 통일하자는 한약사와 생약으로 통일하자는 약사 간의 논쟁도 벌어졌다. 한의사와 의사의 일원화, 한약사와 한의사의 의약분업을 중심으로 한 직능다툼도 일부 드러났다.

이와 관련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박주영 생약제제과장은 “이번 간담회는 공무원으로써 정말 큰 용기를 낸 것”이라며 싸워도 좋으니 다음에도 또 만나 싸우더라도 돌아서지만 말자는 뜻을 밝혔다.

식약처 김영우 한약정책과장도 “그간 단절됐던 소통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진일보”라며 “향후에는 간담회가 아닌 TF(task force)형태의 협의체를 구성해 지속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해 한약의 발전과 정책의 방향을 함께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곪아가던 보건의료계 직역 간 대립을 직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더불어 일회성,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 다툼이 있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직역의 발전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단초가 됐다고 평가된다.

한 한의협 관계자는 “20여년 동안 제자리에 서있기만 했다. 이제 대화를 시작했다. 고착화되는 것을 바라는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처음이기에 미흡한 모습들을 보였고, 일부에서는 예의를 지키지 못한 점도 있었지만 국민건강을 위하는 마음은 하나였다”며 발전적인 논의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이라는 뜻의 ‘전입미답(轉入未踏)’이란 사자성어는 신비로움, 새로움이라는 의미와 함께 두려움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없기에 미래가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펼쳐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발걸음을 멈추면 미래는 다가오지 않고 상황은 그 자리에 멈춰버릴 뿐이다. 박 과장의 이야기처럼 싸우더라도 만나서 이야기해야한다. 등을 돌리고 외면하면 나아갈 수 없다. 

다만 참석하는 이들이 처음보다는 열린 마음과 공통의 목표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나아가길 바란다. 한의계는 한의학과 한약을 ‘전통적인 맞춤형 의학’이라고 말한다. 가치판단을 떠나 전통적인 맞춤형 의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함께 노력해야한다. 적어도 상대를 무턱대로 배척하고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합리적이지 못한 태도는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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