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인력 확충과 의료전달체계 확립, 병상총량제, 건강보험 보장성 80%이야말로 돈벌이 병원이 아닌, ‘좋은 병원’을 위한 필수 선결조건이다.”
나순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신임 위원장(53)의 일갈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나 신임 위원장은 최근 구성된 8기 집행부가 이러한 ‘필수 선결조건’을 위해 “뚜벅뚜벅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 신임 위원장에게 보건의료노조의 향후 행보와 함께 ‘노동조합’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도 짚어봤다. 사실 ‘귀족노조’, ‘노조=빨갱이’ 등과 같은 인식은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 및 보수 여당, 그리고 재계로부터 주입된 측면이 없지 않다. 이에 대해 나 위원장은 “노조가 있고 없고에 따라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천지차이”라고 일축했다. 쿠키뉴스는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나 신임 위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향후 보건의료노조가 가장 주안을 두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조합원들의 문제는 환자들의 의료서비스와 직결된다. 인력 문제 해결은 반드시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좋은 병원이 되려면 의료 제도의 여러 맹점이 해결돼야 한다. 작금의 상황은 돈벌이 추구를 위한 도구처럼 변질돼 버렸다. 그러려면 일단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확립돼야 한다. 메르스 사태 이후로 보건의료노조는 정부와 함께 이를 논의 중이다. 1·2·3차 병원은 경쟁관계가 아니다. 국립대병원, 사립대병원, 지방의료원, 민간 중소병원 등은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갖고 있다. 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
또 다른 하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확대다. 돈이 없어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하지 않나.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목표는 70%이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80%까진 달성해야 한다는 게 보건의료노조의 입장이다.
- 의료전달체계와 관련해 어떤 논의를 하고 있는가.
현재 상황은 감기 환자를 받고자 1·2·3차 병원들이 모두 경쟁하는 꼴이다. 3차 병원은 외래환자보단 입원 중심으로, 1차 병원은 감기와 같은 가벼운 외래 환자를 진료하다 중증 환자는 2, 3차 병원으로 전원시키는 방식이라야 옳다. 보건의료노조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의료전달체계협의체에 속해있고, 여기서 이러한 의료전달체계 확립 요구를 하고 있다.
- ‘지역별 병상 총량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은 이미 이를 도입한 지 오래다. 현재 여러 병원들이 분원을 짓는데 혈안이 돼 있다. 본원만으론 의료수익을 확보할 수 있고, 도태된다고 여긴다. 그러다보면 기존의 병원들도 시설 확대 등 과도한 경쟁에 나서게 된다. 병상 총량제를 도입하면 과도한 병원 증개설이 아닌, 현재 있는 병원에 투자하게 된다. 양적인 시설 확충보단, 질적인 경쟁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재정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국민들은 ‘건강보험으로 해결이 된다면 왜 비싼 민간보험을 들겠는가’라고 말한다. 현재보다 병원비를 덜 내고 치료를 받을 수 있거나 민간보험 없이 건강보험으로만 치료가 가능하다면, 국민들은 건강보험료를 기꺼이 더 낼 용의가 있을 것이다.
◇ “노조 있는 직장”
- 대중은 노동조합에 대해 편견과 때로는 적개심을 갖기도 한다. 이러한 세간의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복안이 있는가.
역대 정권과 언론의 잘못이라고 본다. ‘노조=빨갱이’, ‘귀족노조’, ‘회사보단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조직’ 등 여러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최근 을지병원 파업 첫 날, 할머니 한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왜 노조가 파업을 해서 불편을 초래하느냐고 하더라. ‘할머니 손녀가 간호사라고 생각해보시라’며 주욱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그러자 왜 대화가 아닌 파업을 하느냐고 묻더라. 수개월동안 대화를 했지만, 통하질 않아 어쩔 수 없이 파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파업 빨리 끝낼 테니 병원장에게 가서 말 좀 해주시라’고 했더니 수긍하시더라.
- 정리하면, 대중과의 스킨십이 필요하다는 결론이기도 한데.
‘필요성’의 당위는 노동자라면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선 100% 공감하리라고 본다. 여러 조합원들로부터 ‘노조가 있어서 이 병원엘 왔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노조 없는 사업장에서 구성원들은 내심 노조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비록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긴 하지만, 성숙한 사회라면 사업장마다 쉽게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노조 조직율이 높은 국가들은 대개 ‘복지국가’로 불리는 나라들이다. 우리 정부도 복지국가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지향한다면 노조를 향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현장에서 노조 결성을 계속 도울 계획이다.
-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찍히는 게 아닌가’라는 공포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긴 하다. 보건의료노조가 사회적 이슈화를 통해 각 사업장마다 다소간의 개선이 있을 순 있다. 그러나 종국에는 개별 사업장의 노조를 통한 변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따라서 향후 중소병원과 의원들까지 노조 가입을 확대 시킬 계획이다.
- 실제로 1, 2차 의료기관의 노동 실태는 매우 열악하지만, 고용노동부 진정이나 고소, 퇴사 등 모두 개인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일반적으로 의원급은 간호조무사들이 대다수다. 인천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간호조무사의 조직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와 보건의료노조가 연대해 간호조무사 보수교육에서 노동법 해설 강의나 노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상당수 인원이 노조에 가입을 한 상태다.
- 어떤 형태로 노조가 구성되나.
보건의료노조 인천지역지부에 가입하는 형태다. 조합원이 직장에서 곤경에 처하면, 인천지역지부가 사용자와 면담, 해결을 촉구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것만으로도 사용자들은 함부로 대하질 못한다. 이 사례를 모델로 향후 인력 충원 등을 통해 의원급 소속 노동자들의 보호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 다른 측면도 생각할 수 있겠다. 동네의원에선 급여 문제나 채용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간호조무사들이 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간호사-간호조무사 사이의 교통정리랄까.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관계가 좋다곤 할 순 없다. 동시에 간호사와 의사의 관계 역시 껄끄러운 측면이 있다. 이는 업무 특성이나 병원 특유의 수직적인 관계에 기인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한간호사협회는 일정 경력과 업무 숙련도 등이 인정된 간호조무사에게 ‘LVN(Licensed Vocational Nurse·준간호사)’의 역할을 맡길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간호사들은 반대한다. 아울러 전공의가 부족한 이유로 간호사들이 ‘PA(Physician Assistant·의사보조)’로 사실상 의사의 업무를 맡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PA의 합법화에 대해 의사들은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LVN과 PA를 법제화해 도입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모델의 국내 도입까진 상당한 진통과 논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의료 인력난에 따른 여러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다. 보건당국과 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해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이 머릴 맞댈 시점이라고 본다. 의료사고가 나면 간호사가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아, 의료 현장에서 우선적으로라도 PA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감정노동 실태도 심각하다.
감정노동도 인력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인력이 여유가 된다면 환자 돌봄에 더 신경을 쓸 수 있고, 그러다보면 환자 및 보호자의 불만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도 및 규정으로 감정노동 사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폭언 및 폭행을 당한 환자를 다시 돌보게 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최소한 분리 조치 정도는 이뤄져야 한다.
- 감정 노동과 관련해 보건의료노조 차원의 대책이 있는가.
사후 분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병원내 제도화 및 감정수당 도입이 필요하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일부 지급하는 것을 합의했다고 전해진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감정노동자라는 점을 주지시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는 보건의료 분야 감정 노동 실태를 사회적으로 알린다는 함의도 갖는다. 이러한 방안을 고려 중이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