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산곡동에 위치한 남원 교룡산성은 둘레 3,120m에 이르고 있으며, 산의 정상 높이는 해발 518m이고, 정상에서 능선을 감싸 안은 포곡식 산성으로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원시는 교룡산성의 정비 복원을 위한 학술자료 확보를 위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재)전라문화유산연구원이 조사 중인 남원 교룡산성 군기고터 발굴조사 결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지난 11월 20일 학술자문회의, 12월 7일 교룡산성 군기고터 현지보고회를 발굴조사 현장에서 실시했다.
남원 교룡산성은 문헌에 조선시대 산성으로 기록되어 있어 그 동안 교룡산성 및 그와 관련된 부속 건물지 등은 조선시대와 결부시켜왔다. 물론 현재는 교룡산성을 제외한 건물지 등은 오래전 없어지고 그 터만 남아 있어 정확한 위치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군기고터는 교룡산성과 관련해 최근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그 위치가 구전 되어온 건물지로 지표에서 철제 화살이 수습된 바도 있다.
이에 관련자들은 그 동안 이곳을 조선시대 군기 고터로 추정했다. 하지만 발굴조사 결과 조선시대와는 관련 없는 통일신라말~고려초기의 대규모 건물지로 확인됐다.
건물지는 크게 3차례에 걸쳐서 중창됐으며, 이중 1차 건물지가 가장 잘 남아 있다. 건물지의 규모는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규모는 장축 1,420cm, 단축 850cm, 주간 거리는 200cm 내외이며 정면의 축대를 기준으로 동·서쪽 기단이 명확하게 확인된다.
축대는 돌과 흙을 이용해 상당한 넓이와 두께로 조성했는데 결과적으로 건물지의 위용을 드러내는데 매우 효과적으로 기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2차 건물지는 기단장축 방향의 북쪽 초석 7개만 남아 있는 상태로 1차 건물지 동‧서 기단을 그대로 사용했고, 북쪽 기단이 남쪽으로 전진하면서 새롭게 조성된 건물지로, 1차 건물지 폐기 후 기와를 두껍게 깔아 기단토를 조성한 후 그 위에 마련했다.
1차 건물지의 사용시기와 2차 건물지의 사용시기는 거의 동일한 시기로 보이며, 3차 건물지는 추정 초석만 일부 확인될 뿐 본래 구조나 규모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발견된 유물은 평기와류가 대부분인데 통일신라시대 문양으로 추정 되는 무늬가 없는 무문과 선 모양의 무늬가 새겨진 선문계 기와, 그리고 격자문이 새겨진 격자문계 무늬가 다수를 이룬다.
특히 생선뼈 무늬가 표현된 어골문계 기와가 소량 출토됐는데 이는 고려시대의 문양으로 어골문의 초기형태로 추정돼 그 의미가 크다.
건물지가 조성된 시기는 출토유물로 보아 통일신라말~고려 초로 추정, 사용 시기가 매우 한정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지표에서 수습된 다량의 석환은 이번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건물지와는 관계 없지만 동학혁명 때 남원에 주둔한 지휘부가 교룡산성 내 선국사에 머물렀다고 전해지므로 이와 관련된 유물로 추정되며, 이러한 사실은 이곳이 군기 고터로 전해지게 된 계기로 생각된다.
남원=유승호 기자 a2396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