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책5공’이라고 들어보셨나요? 1명의 연구자가 최대 3개의 책임과제와 5개의 공동과제만 해야 한다는 ‘제한선’을 의미합니다. 연구자는 1~2개의 책임과제와 1~2개의 공동과제가 최대치라는 건 연구 일선에서 공공연한 말입니다. ‘기초’ 연구비는 대개 2억 원이 최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초 연구자는 늘 돈에 쪼들립니다(임상 분야 연구비는 기초에 비해 조금 더 많다고 알려져 있지만, 신진 임상 연구자들 입장에서 ‘연구비 흉년’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연구생과 대학원생의 ‘열정페이’를 양산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연구계의 관행도 한몫 합니다. 연구생과 대학원생을 향해 ‘배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쓰고 ‘열정페이 강요’로 읽는 ‘관행’ 말입니다.
‘연구비’라는 ‘파이’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사실도 문제입니다. 파이의 가장 큰 부분(대단위 연구비)은 일부 특정 대학, 사실상 서울대에 집중돼 있습니다. 서울대의 국내 ‘독보적’ 위치는 ‘독점적’인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굵직한 연구비를 받는다고 해서 연구원 인건비 역시 충분하게 책정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스러기’라도 받으려고 연구자들은 아우성입니다. 연구비 부정 수급 문제가 끊이질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기울어진 연구비 집행에 기인합니다. 과제를 ‘따내는’ 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정치적인 힘이 작용하고, 줄을 서고, 학생들의 노동력을 강탈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지난 2일 <[단독] 前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수십억 혈세 동문과 부인 소속 병원에 ‘펑펑’> 제하의 기사가 보도된 후 상당히 많은 독자들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반응은 대동소이했습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해당 연구비 의혹은 왜 국립정신건강센터가 동일한 시기(2015년 9월)에 시작되는 연구 과제에 ‘일괄적으로’ 연구비가 지원됐느냐에서 시작됩니다. 본지 취재 결과, 연구 분야를 정하는 내부 위원회가 존재했습니다. 여기에는 A 전(前) 센터장도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과장이었던 B씨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부부였습니다.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에 연구비 19억여 원이 지원되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력이 행사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연구과제의 우수함 때문에 과제들이 선정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빅5 병원’에 삼성서울병원이 속하는 만큼 해당 위원회에 삼성서울병원의 진료과장이 참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조치였을 지도 모릅니다. A 전(前) 센터장이 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였고, 후배 정신과 교수들이 줄줄이 연구비를 지원받았다는 것을 복지부가 문제 삼지 않은 이유는, 말 그대로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본지가 지적한 연구 중에는 8억2000만원의 연구비가 지원된 <자살관련자 코호트기반 위험요인 예측모델 개발>이 있습니다. 해당 연구의 책임자인 C씨는 A 전(前) 센터장에 이어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리고 A, B, C 모두 서울대의대 출신입니다. 우연의 일치로만 치부하기에는 접점이 촘촘합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나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치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기관의 장이라면 의혹을 살만한 결정은 차단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국민들의 피같은 세금으로 기관을 운영하라는 엄중한 책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전체 연구비 액수는 사실상 정해져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연구비가 지원되면, 다른 연구자는 연구 기회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연구 지원 선정은 엄격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오롯이 연구의 가치로만 판단되어야 합니다. 세수로 마련된 연구비는 실적 쌓기를 위한 ‘논문 제작용 연구’에 지원되어서는 안 됩니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공개적으로 요구합니다. 제기된 의혹에 답하십시오. 의혹의 해소는 침묵이 아닌, 해당 연구 지원의 당위성을 규명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19억여 원의 연구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집행되었는지, 해당 연구들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밝히십시오.
보도 이후 국립정신건강센터는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사업의 연구과제 기획은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기획위원회와 과제수행기관 선정은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과제평가단이 결정한다”며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이 평가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과제수행기관 선정과 과제평가단 참여 인사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 명명백백하게 밝히시기 바랍니다.
또한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에 ‘집중적으로’ 지원된 게 아니”라고도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쿠키뉴스 취재 결과, 비단 서울대병원과 삼성병원 외에도 타 병원도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거듭 요구합니다. 국민의 세금이 허투루 사용되었는지, 아닌지를 지금이라도 검증하십시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