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올해 8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를 넘어서며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고령자는 노화 및 각종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에서 안전사고에 취약하며 가벼운 사고에도 치명적인 상해를 입을 수 있는 대표적인 안전취약계층이다. 그러나 최근 이들의 안전사고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시사 하는 바는 하나다. 이제 막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에서 노인을 위한 ‘안전지대’가 과연 존재하느냐는 문제의식이 그것이다.
#김흥수(80·가명)씨는 최근 신경외과를 오가며 진료를 받고 있다. 화장실에서 넘어진 김씨는 뇌진탕을 호소했다. 비단 김씨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낙상 등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비슷한 연령대의 지인들이 적지 않다. 김씨는 “바람만 불어도 조심해야 한다”며 “다쳐도 쉽게 낫질 않아 고생”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해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onsumer Injury Surveillance System, 이하 CISS)에 접수된 만 65세 이상 고령자들의 안전사고는 5795건이었다. 이는 전 연령 중 8.4%를 차지하는 비율. 2014년~2016년 사이 안전사고를 당한 고령자의 비율은 ▶2014년 4453건(6.6%) ▶2015년 5111건(7.5%) ▶2016년 5795건(8.4%) 등으로 계속 증가해왔다. 같은 기간 동안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안전사고로 내원한 고령 환자의 수 역시 ▶2014년 1426명 ▶2015년 1294명 ▶2016년 1156명 등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김씨와 같은 낙상사고는 매년 2500건 이상 발생하는 대표적인 안전사고다. 낙상은 특히 고령자에게 치명적이다. 고관절 골절이나 뇌출혈로 사망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낙상은 인구 10만 명당 1376명(20.3%)의 사망 원인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고령자 1인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낙상 등의 안전사고 발생 시 응급조치를 제때 받지 못해 ‘병을 키우’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고지대’는 어딜까. 한국소비자원의 CISS 분석 결과, ‘주택’이 3506건(60.5%)으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주택에서도 사고는 주로 ▶침실·방 868건(15.0%) ▶화장실·욕실 638건(11.0%) ▶거실 487건(8.4%) 등 일상 거주 공간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정리하면 65세 이상 고령자들은 주거지에서 낙상 등의 안전사고에 무방비 노출돼 있으며, 이로 인해 사망 등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언제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박정호 교수는 고령자에게 있어 안전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왜냐하면 사망 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고령자의 안전사고 비중은 20% 내외이지만, 전체 사망 사고 원인에 비추어보면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고령자의 안전사고는 80%대의 사망사고 비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낙상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박 교수가 추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정 내 안전 손잡이, 미끄럼방지 타일 활용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는 약이나 저혈압을 유발 약 복용 시 주의 ▶ 생활공간을 밝게 할 것 등.
그러나 일단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후유증과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 골절 시 다친 부위를 고정시키고 환부를 심장보다 높은 곳에 위치시켜 부종을 줄여야한다. 외상성 뇌손상의 경우 척추 손상이 동반될 수 있기 때문에 척추를 고정,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도 후유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별 예방만큼 정부 당국의 안전사고 예방안도 확립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를 의식한 듯 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안전주의보 발령’ 이하 예방안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예방안의 취지는 이렇다. ‘고령자에게 다발하는 안전사고 유형 및 예방 방안 등을 소비자안전주의보를 발령, 정보를 제공한다.’ 이밖에도 ‘예방가이드 리플릿 제작’ 및 ‘고령친화제품 관련 위해정보 모니터링’도 지속키로 했지만, 다분히 소극적인 예방안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거실에서 낙상, 고관절 부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김옥분(80·가명)씨는 개인 차원의 예방 대책에 분통을 터뜨린다. 김씨는 “갑자기 찾아오는 사고를 노인들이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보건 당국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