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등장할 법한 사건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벌어졌다. 27일 현지 주민들은 아연실색했다. 하늘에서 내리던 눈이 푸른색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당국은 눈 속에서 코발트와 메틸렌블루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인근의 화학연구소를 ‘푸른 눈’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파란색 눈’과 같은 충격적인 사고는 비단 러시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 한해 한국은 잇단 화학물질 유출 사고로 불안과 공분에 휩싸였다. ‘농약 계란’과 ‘생리대 파동’이 연이어 발생하는 동안 ‘케미컬 포비아’(화학 혐오)는 전국으로 확대됐다. 사실 더 정확하게는 혐오보다 공포에 가깝다. 공포의 근원은 화학물질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되고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등록 꼼수 등을 통한 ‘깜깜이’ 문제나 제한물질을 사용해도 별다른 제재가 없는 등 화학물리 관리 감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그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사회적 감시 체계를 마련하라는 목소리는 크지만, 국회나 환경부는 이러한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질산 정제시설 내 이송배관의 개스킷 교체작업 도중 자동펌프가 작동, 교체 중이던 개스킷 부위로 질산 약 30kg이 유출돼 작업자 2명이 부상을 입음’, ‘대학에서 실험을 마친 후 질산과 염산을 폐기하던 중 폐기물 용기 내 이상반응이 발생, 용기가 파손돼 인명피해가 발생함’, ‘노후 상수관 교체 공사 중 땅속에 있던 미상의 깨진 유리병(약 500㎖용량 추정)에서 미상의 노란색 물질이 나와 작업자 2명이 흡입한 후 인후통 및 어지러움을 호소, 병원에 이송’.
열거한 내용은 올해 일어난 화학물질 유출 사고의 극히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화학안전정보공유시스템(CSC)에 따르면, 지역별 사고는 누출 236건, 화재 22건, 폭발 37건, 기타 36건 등이었다. 지역별 사고 유형은 ▶저장탱크 78건 ▶작업공정 105건 ▶차량 71건 ▶해상 3건 ▶기타 14건 등으로 기록됐다.
정리하면 화학물질은 전국에 걸쳐 끊임없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첫 걸음은 화학물질 사용 및 활용에 대한 엄격한 사회적 감시와 견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강 의원의 지적에는 현행 화평법과 화관법에 ‘구멍’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전제돼 있다. 그가 이달 대표발의한 ‘화학물질 관리강화 4법’도 동일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결과물이다. 해당 법안들은 곧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3건과 ‘화학물질 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칭한 말이다.
우선 ‘시험기관 관리 강화법’의 골자는 시험기관이 운영실적을 환경부장관에게 보고하라는 것이다. 현재는 장관 보고 절차가 없어 기업이 화학물질 등록을 위해 기관에 의뢰하는 시험 현황과 국내 시험기관의 수용여부와 시험여부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등록면제확인변경요청 신설법’ 역시 화학물질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이 주된 요지다. 현행법은 연구개발용 등의 경우, 소요 기간과 제조·수입 예정량, 연구기관 등이 변경될 시 변경요청을 하는 별도의 절차가 없었다. 따라서 등록면제를 받은 화학물질의 양, 사용기관 등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 없어 ‘깜깜이 법’이란 비판이 적지 않았다. 개정안엔 등록면제확인을 받더라도 제조·수입량 등이 변경되면 반드시 환경부 장관에게 변경요청을 하도록 하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또한 ‘유해성평가결과활용법’은 유해성 시험자료의 공유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법률안이다. 현재 환경부의 유해성평가 결과는 외국 법령에 따른 화학물질의 등록이나 유해성심사 신청의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자에게 환경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화평법 제10조에 따라 국내 화학물질의 등록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자에겐 제공에 관한 규정이 없었다.
이밖에도 ‘제한물질 취급 기준 벌칙 신설법’은 제한물질의 취급기준 위반에 대한 벌칙규정이 신설됐다. 현행 법에는 유해성 및 위해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유독물질 ▶허가물질 ▶제한물질 ▶금지물질 등으로 정해두고 있다. 금지물질은 취급금지 규정을 위반하면 벌칙기준에 따라 일정한 제재안이 발효될 수 있지만, 제한물질은 해당사항이 없어 사실상 안전보다 ‘기업을 위한 법’이란 비판이 적지 않았다.
강병원 의원은 “현행 화평법과 화관법의 구멍을 손봤다”면서 “개정안 및 화학물질 감시 체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