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성모병원 20년 근무 간호사의 죽음

인천성모병원 20년 근무 간호사의 죽음

떠난 사람 ‘고(故) 이은주 보건의료노조 인천성모병원지부장’…그리고 남은 자들의 숙제

기사승인 2017-12-31 05:00:00

인천성모병원의 이은주 간호사가 지난 26일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패혈전증으로 추정된다. 향년 53. 죽음은 으레 남겨진 이들에게 부채감을 지우기 마련이지만, () 이은주씨의 죽음은 병원이 삶의 터전인 직원들의 가슴에 깊은 멍을 남겼다. 한 직원은 울먹이며 말한다. “저 나이에 응급실 3교대 근무를 해야 했다.” 이들의 가슴엔 떠난 이에 대한 미안함이, 눈에는 분노가 일렁이고 있다. 이 분노의 정체는 무엇일까?

() 이은주 간호사는 1987년 고려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후 1995년 당시 성모자애병원(현 인천성모병원)에 입사했다. 입사 직후 노동조합에 가입, 보건의료노조 인천성모병원지부 여성부장과 교육부장을 거쳤다. 지난해 7월에는 노조 지부장에 취임해 인천성모병원 정상화투쟁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승진에서 번번이 누락된 그는 주로 외래 근무를 해왔지만, 사망 직전에는 응급실에서 3교대 근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의료기관과 비교하면 수간호사급의 연차임에도 5~10년차 간호사들과 다름없는 근무를 하도록 조치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수년간 인천성모병원과 관련해 함께 여러 활동을 해온 보건의료노조 박민숙 부위원장은 노동조합 활동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27일 인천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병원 직원들로 발 비빌 틈 없이 붐볐다. 그의 죽음은 비단 그가 평생을 몸담았던 병원뿐만 아니라, 국내 의료계와 노동계까지 적잖은 충격을 줬다. 공통된 평가는 이렇다. “사측의 온갖 탄압으로 조합원 10명으로 쪼그라든노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 이 말은 국내 보건의료 노동계에 고인이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를 말해준다.

혹자는 그 원동력을 열정이라고 말하고, 다른 이는 헌신이라고도 말한다.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떠난 이에게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인천성모병원 직원들의 추모 열기를 통해 일정부분 가늠할 수 있을 터다. 박민숙 부위원장은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27일 수간호사 2~30명이 빈소를 찾았다. 5~10년차 간호사들도 아침근무가 끝나는 시각인 오전 4~5시 사이에 매우 많이 방문했다. 장례식장은 추모객들로 가득 찼다. 오후가 되자 일을 마친 일반 직원들도 찾아왔다. 혹시 병원에서 집단 조문 지침을 내린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빈소를 찾은 이들마다 이은주 선생님이 너무 불쌍하다. 저 나이에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28일 열린 추모제에는 200명 가까인 인원이 빈소에 운집했다. 오후 늦게까지 장례식장 입구까지 꽉 찰 정도로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 장내는 울음바다였다. 병원 경영진을 향한 원망 섞인 말들도 적지 않았다. “저 나이에 3교대로 돌리면(근무를 하면) 나 같으면 절대로 못했을 것이다”, “끝까지 소신을 갖고 노조를 지키려 싸우다 응급실로 좌천된 거다.”

변화의 날, 그는 떠났다

26일 인천교구는 인천성모병원에 대한 대단위 인사발령을 발표했다. 앞서 <뉴스타파>를 필두로 병원 핵심 인사들에 대한 비판 보도가 줄줄이 이어지자 20여 일 동안 침묵을 지킨 교구는 인사발령 카드를 꺼내들었던 것이다.

보건의료노조 박민숙 부위원장은 병원 직원들은 변화의 물꼬를 바라고 있다“3년 동안 싸워 결국 주교가 인사발령을 냈다고 해당 인사 발령이 갖는 의미를 전했다. 이 말처럼 병원 안팎의 분위기는 술렁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최전선에서 싸워온 단 한 사람, () 이은주 지부장만은 그날 밤 불귀의 객으로 떠나 변화의 온풍을 쬐지 못했다. 병원 직원들이 이 지부장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말한다. 남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이제는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노조탄압이 없는 곳에서 편하게 잠들길 기원한다. 환자와 노동이 존중받는 병원을 살아남은 우리들이 어떻게든 만들겠다. 그리고 인천성모병원은 지금이라도 고인에게 조의를 표해야 한다. 병원 갑질 문화 개선의 계기를 삼아야 한다. 병원 민심은 요동치고 있다. 숨겨졌던 진실을 더 드러내 이은주 지부장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보건의료노조 박민숙 부위원장)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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