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각규 롯데지주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호남석유화학에서부터 신동빈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조력한 황 부회장의 승진으로 롯데그룹의 2인자 자리를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황 사장은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체제를 빠르게 확립시켜 온 인물이다. 지난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함께 롯데지주 공동대표를 맡았다. 신 회장이 '뉴 롯데'를 선포할 때 황 부회장이 실무를 지휘했고, 신동빈 회장이 참석하지 못하는 곳에서 업무를 대신해 왔다. 롯데그룹 정책본부 내에서 승진한 부회장은 고 이인원 부회장 이후 처음이다.
서울대를 나와 1997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 입사한 황 부회장은 1990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수업을 위해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롯데에 첫 발을 들이면서 서로 인연을 맺었다.
곧 신동빈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1995년 롯데그룹으로 옮겨 국제팀장, 운영실장, 경영혁신실장을 두루 거쳤으며 굵직한 인수합병을 주도, 롯데그룹의 운명을 결정했다. 무엇보다 지난해 출범한 롯데그룹 지주사의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고 이인원 부회장을 대신해 굵직한 현안을 처리해 '뉴 롯데'의 기치를 올렸다.
롯데그룹은 지난 몇 년간 격랑에 휩쓸려왔다. 지난 2016년 신동빈 회장은 형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형제간 경영권 다툼을 벌이며 오너와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했다. 이 와중에 베일에 가려져 있던 롯데그룹 지배구조가 드러났다.
한국 롯데그룹이 사실상 일본 모기업인 광윤사에 호텔롯데를 통해 종속되어 있으며 순환출자 규모도 상당하다는 것이 밝혀지며 국민적인 공분을 샀고, 이는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이에 신 회장은 2016년 10월 직접 기자회견을 갖고 "복잡한 지배구조와 권위적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적 기대를 만족시키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며 "새로운 롯데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 자리에서 신 회장은 권위적인 컨트롤타워였던 정책본부의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말했으며 빠른 시일 내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호텔롯데의 상장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신동빈 회장은 이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책본부를 대체한 경영혁신실의 실장으로 황 부회장을 선임하며 '뉴 롯데' 비전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다. 황 부회장은 그 곁에서 엄청난 속도로 신동빈 회장의 구상을 실현해왔다.
롯데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았던 4월에는 '뉴 롯데'를 선포하며 외형 확장보다 질적 성장을 다짐하고, 준법 경영과 투명 경영을 강조하며 순환출자 해소도 빠르게 진행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롯데그룹의 모태회사인 롯데제과를 중심으로 한 4개 상장 계열사의 투자부문이 합병된 '롯데지주 주식회사'가 공식 출범했다.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등 4개사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한 뒤 롯데제과의 투자부문이 나머지 3개사의 투자부문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여기서 신동빈 회장과 황 부회장은 공동 대표를 맡았다.
기자간담회에서 신 회장을 대신해 참석한 황 부회장은 "(지주회사 출범은) 국민께 약속 드렸던 것을 실현하는 본격적인 걸음"이라며 "더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1월에도 롯데그룹은 롯데상사 등 6개 비상장 계열사를 흡수 합병하며 거미줄처럼 얽혀 있던 순환출자 고리를 공식적으로 모두 해소했다. 롯데지주 차원에서 전두지휘하며 계획을 실행한 결과 시장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경영구조를 투명화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황 부회장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는 평가다.
이런 공을 반영해 이번 인사에서 롯데지주 출신도 대거 승진했다. 특히 황 부회장을 보좌한 이봉철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봉철 사장은 1986년 입사해 정책본부 재무팀장, 롯데손해보험 대표이사 등을 거쳤다. 2014년 정책본부 지원실장을 맡으며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에 힘썼다.
황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과 롯데그룹 경영비리 혐의에 연루되는 등 고초를 겪으며 더 단단해진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과 황 부회장은 롯데그룹 경영상의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로부터 각각 징역 10년, 징역 5년을 구형받았으나 결국 법원 판결에서 신 회장은 집행유예, 황 부회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구현화 기자 ku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