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구명은 무릉도원 아니냐/ 무릉도원은 어데 가고서 산만 충충하네/ 맨드라미 줄 봉숭아는 토담이 붉어 좋고요/ 앞 남산 철쭉꽃은 강산이 붉어 좋다/ 봄철인지 가을철인지 나는 몰랐더니/ 뒷산 행화 춘절이 날 알려주네
정선아리랑의 한 대목이다. 가수 전인권씨가 평창동계올림픽 헌정곡으로 선보인 ‘정인권표 정선아리랑’은 뮤지션으로서 그의 도전 정신이 듬뿍 담겨있다. 여기에 정선에 대한 전 씨의 감흥과 정취, 그리고 한 평생 음악인으로 살아온 심정도 배여 있다. 최근 대중에 공개된 정선아리랑보다 더 진중하고 담백한 ‘완전판’은 오는 3월 전 씨가 선보일 본인의 새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모처에서 가수 전인권씨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는 한국 전통 민요에 대한 견해와 음악적 지향점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내린 ‘히트가수’의 정의란 삶의 애환을 끌어안는 가수. 그러나 본인은 아직 갈길이 멀다고 손사레를 쳤다. 호기심 많은 기자가 히트가수라는 정상에 얼마만큼 오른 것 같은지 거듭 묻자 그는 마지못해 “산중턱까지는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기사는 앞서 보도한 <전인권의 평창올림픽 헌정곡은 ‘정선아리랑’>의 뒷이야기다.
- 진도아리랑 매료… 우리 음악 대중화 실패는 아쉬워
- 강원도 생활 통해 희망 갖게돼
- 촛불 집회서 애국가 부른 것 기억나… 촛불 정신 이어가길
▷기자=곡 작업을 하면서 희열이 컸을 것 같아요.
▶전인권=실제로 어려움은 많지 않았어요. 진도아리랑의 매력이 워낙에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론, 우리 음악의 대중화는 작은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저는 심각하다고 보거든요. 과거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뮤지션들이 여러 시도를 한 적이 있어요. 확실한 건 우리 음악의 대중화는 ‘실험’이나 ‘퓨전’으로만 끝날 게 아니라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아무도 못했어요. 클래식과의 협업도 이뤄졌지만, ‘히트’에는 실패하고 말았죠.
▷실패의 근본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폭넓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음악은 여러 요소를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규격화뿐만 아니라 우리 정서가 물씬 배어있어야 하죠. 국악 뮤지션인 김영동씨는 제가 존경하는 분이기도 한데, 그분이 ‘어디로 가나’라는 화두를 던지고는 작업을 끝내셨어요. 한국 고유의 음악을 외국에 알리는 작업을 20년가량 하신 분이셨어요. 굉장한 분이죠. 이른바 ‘촛불 음악’의 역사에도 빠질 수 없는 분이고요.
▷2월 초부터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합니다. 이 기간 동안 전인권씨의 목소리가 담긴 정선아리랑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가 작업한 정선아리랑은 공식 올림픽 응원곡에는 포함되지 않아요. ‘무겁다’는 견해가 있고, 올림픽에는 가벼운 풍이 필요하다고들 하죠. 그렇지만 그건 아니에요. 틀린 이야기에요. 서로의 입장은 다르니까요. 어디서 제 버전의 정선아리랑을 들려줄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외국에서 온 선수들과 감독, 뮤지션, 기자들 중에 이런 음악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들에겐 (제 버전을) 들려줄 수 있겠죠. 대중화되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선아리랑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리 전통 음악에 대한 견해를 좀 더 들어볼게요. 결국은 ‘히트’ 그러니까,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그렇죠. ‘히트’가 안 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향후 전통음악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게 있습니까?
▶진작 우리 음악의 기본은 다 익혀두었어요. 물론 산에 들어가서 수개월동안 창을 하는 방식으로 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우리 가락의 ‘맛’은 잘 알죠. (이 부분에서 실제 노래를 들려줬다) 이게 쉬울 것 같아도 쉬운 게 아니거든요. 우리 밴드의 머릿속엔 이게 각인돼 있어요. 이번 정선아리랑만 해도 코러스를 하는 이십대 친구들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완전히 다르다’면서 제 지향점을 완전히 신뢰하게 됐죠.
▷젊은 뮤지션들이 말이죠.
▶네. 이전까진 제 스타일로 팝송을 부르면 의아해했거든요. 그런데 정선아리랑을 듣고 ‘너무 좋다. 이해가 된다’ 그렇게 된 거죠.
▷강원도에 대한 어떤 특별한 이미지를 갖고 계신 것 같아보여요.
▶그럼요. 강원도가 좋아서 속초에서 8개월 동안 산적도 있어요. 제주도에서 석 달 가량 지내다가 ‘아휴 못살겠다’ 그러고는 나왔죠. 제주도가 참 좋은 관광 명소이긴 한데, 거기 살면서 뭔가를 창작하는 건 어렵더라고요. 속초에 간 뒤에는 산에 엄청나게 많이 다녔어요. 제가 아직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죠.
▷가수 전인권을 매혹시킨 ‘강원도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속초에서 지낼 당시 눈 덮인 산을 자주 갔어요. 마침 1미터 넘게 폭설이 쏟아졌을 때였어요. 새벽에 흔들바위까지 갔어요. 올라가 지더라고요. 산에 다니면 알게 돼요. 어디에 발을 딛어야 할지, 어딜 밟으면 넘어지는 지를요. 이런 것들이 쌓여 나일 먹으면 지혜로 남게 됩니다.
▷올라가는 재미라…. 당시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았던 때였나 보죠?
▶그렇죠. 날 바꾸고 싶었어요. 물론 8개월 만에 나란 사람이 180도 바뀌진 않죠. 다만, ‘희망을 갖고 나아가자’ 그렇게 됐던 거예요.
▷속초에서의 경험, 강원도에 대한 감상이 이번에 작업한 ‘정선아리랑’에 배여 있을 것 같아요.
▶네. 경험은 실천이 많이 이뤄질수록 저장되는 양이 많거든요. 그래서 전 후배들에게 ‘경험을 많이 하고, 계획을 실천하라’고 조언해주곤 해요. 등산을 좋아해서 산에 자주 가는데, 대청봉은 6월에 가도 진달래꽃이 피지 않아요. 물도 얼음장 같죠. 한참 산에 오르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꼭 산이 절 쫓아오는 것만 같아요.
▷왜 산이 쫓아오는 것처럼 보일까요? 격랑, 도전 등의 느낌일까요?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우와.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런 느낌이죠. 정상에 오르는 데 집중하다 무심코 돌아보니 보이는 광경일 따름이죠.
◇ “촛불도 불황은 아니길”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시각은 과거 88올림픽이나 2002한일월드컵을 대하던 태도와는 확연히 다른 것 같아요. 과거 ‘똘똘 뭉쳐서 저력을 보여주자’는 식이었던데 반해 지금은 양상이 복잡하죠.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고요. 물론 정치권의 공방도 한몫 할 테고. ‘어른’으로써 어떻게 보세요?
▶단일팀은 필요하다고 봐요. 한국을 위해서요. (북한 선수들이) 같은 동포이기도 하고요. 물론 열심히 올림픽을 준비한 우리 선수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그렇지만 마음을 넓게 가질 필욘 있다고 봐요. 평화에 일조한다는 의미에서요.
▷야당에서는 북한 체제 선전의 기회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해요.
▶올림픽이잖아요. 올림픽이니까 스포츠 정신에 입각해서 경기를 바라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넘어서서 볼 필요가 굳이 있을까 싶어요.
▷확대해석해서 사안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
▶그렇죠. 넘어서서 볼 필요는 없다. 북한과 함께 단일팀을 구성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의 보수 정권을 지나는 동안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측면이 있습니다.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부르신 노래가 대중들의 가슴에 ‘결정적인’ 불을 질렀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만.(웃음) 당시의 소회랄까요, 그리고 1년여가 지난 현재는 어떤 감정이십니까?
▶촛불은 세계사적으로 볼 때 엄청난 ‘사건’이었다고 봐요. 의미는 달랐지만 우드스탁 페스티벌도 촛불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은 정말 굉장했잖아요. 정치하는 양반들이 제대로 가지 못할 때나 더 잘 갈 수 있도록 국민들이 힘을 모으면 된다는 걸 보여줬으니까요. ‘촛불’이 지탱되면 우리나라는 더 좋아질 거라고 봅니다. 지금 완전히 불황이어도 촛불만큼은 불황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