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탐사보도팀의 ‘아이파일(I-File : Investigative reporting File)’은 독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거나 알았어도 지나쳤던 일주일 동안의 탐사보도를 풍부한 데이터와 자료, 증언을 더해 쉽고 흥미진진하게 전하는 코너입니다. 기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증언이나 정보를 이곳에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고려했습니다. 매 연재 말미에는 취재기자의 후일담과 주관적인 시각도 집어넣었습니다. 독자들의 응원과 질책, 제보와 참여를 기다립니다.
여기 어떤 국제 구호 재단이 있습니다. 외교부 소속이기도 한 이 재단은 ‘아프리카 말라위 현지 주민 4만여 명에게 무료로 밥을 먹인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종교 단체와 개인들에게 후원을 받아 ‘사업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취재 결과, 후원금의 상당액은 줄줄 새고 있었습니다. 해외로 후원금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실종된’ 후원금은 어디로 흘러갔을까요? 바로 아프리카사랑재단 이야기입니다.
◇ 아이파일① : “내가 입을 열면 더 큰 게 드러난다”
십여 년전 ‘사랑의곡식’이란 후원 ‘단체’가 있었습니다. 단체의 중심은 김모씨. 그는 이후 ‘아프리카사랑재단’으로 간판을 바꿔답니다. 외교부 소속 비영리 법인으로써 주로 종교 단체 및 신도들로부터 후원금을 걷어 들였습니다. 김씨는 ‘사업본부장’으로,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진두지휘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중파와 종편 프로그램 등에 출연, 본인과 재단의 활동을 알리는데 열심이었습니다.
김 사업본부장의 재단 내 영향력은 컸습니다. 그러나 미국 국적을 가졌던 탓에 재단 이사장을 맡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취재진에게 “나중에 알아보니 미국 국적이어도 한국 재단 이사장을 맡을 수 있게 규정이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언론에 비친 재단의 외향과 실제 모습은 퍽 달랐습니다. 특히 황모 이사장 재직 당시 불거진 후원금 사용 문제는 재단의 회계에 대한 여러 의구심이 제기된 계기였습니다. 김 본부장의 부친이자 재단 이사인 김모 이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재단에) 돈이 많이 없다, 돈이 많이 빠졌다’고 해서 황모씨에게 항의를 하고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사건이 있었거든요.(중략) 재단 돈을 유용한 것이죠. 일종의 직무유기를 한 것이고….” 그는 수천만 원이 ‘사라졌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전직 재단 관계자인 임모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황모씨에게 재단 업무를 인수받을 때 황모씨가 재정 사고를 많이 냈어요. 투명하게 자금이 안 쓰였고 후원금 들어온 걸 사적으로 쓴 것도 좀 있는 것 같고요. 황 이사장 체계로는 안 되겠다는 게 그 당시 김모 사업본부장의 판단이었어요.”
그러나 황모씨의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황씨는 수차례 이사장직을 맡을 것을 부탁받아 못이기는 척 수락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재단을 오래 맡은 건 아니었고 잠시 맡았는데요. 저는 저대로 또 다른 말을 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입을 열면) 재단 존재에도(존립에도) 어려움이 올 거예요. 서로 지적을 하고 흡집을 내면 저도 상처를 입겠지만, 그쪽은 더 큰, 상황이나 상처들이 드러날 것이고요.”
취재진이 입수한 재단 내부 계좌에는 황 전 이사장이 수개월에 거쳐 재단에 수천만 원을 보낸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는 “기부의 개념”이라고 밝혔지만, 여러 재단 관계자들은 “황모씨가 ‘그 돈을 나중에 변제하겠다’고 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황씨-재단 사이에는 현재도 감정의 골이 깊어보였지만, 재단은 당시나 이후에도 황 전 이사장과 관련된 여러 ‘돈 구설’을 공식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후원자들에게 상처가 될까봐 참았다”는게 공식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렇지만 황 전 이사장의 “입을 열면 재단의 더 큰 상처가 드러난다”는 말. 그 말은 그저 ‘허튼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석연치 않은 회계 상의 ‘구멍’이 곳곳에서 발견된 겁니다.
◇ 아이파일② : 숨겨진 통장
쿠키뉴스 탐사보도팀은 아프리카사랑재단의 여러 내부 통장들을 입수했습니다. 그런데 계좌들 중에는 유독 출처가 불분명한 통장이 있었습니다. ‘사랑의곡식’이란 부기명으로 개설, 운영된 통장이 그것입니다. 여기에는 최근까지도 후원금이 입금되고 있었습니다. 문제가 되는 이유는 기존 단체는 폐쇄됐음에도 해당 통장이 남아있고 이 통장의 사용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자칫 회계 감사 및 보고에서 누락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소위 ‘대포통장’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취재 결과, 문제의 통장은 과거 전모씨의 명의로 개설된 것이었습니다. 통장 소유주는 아직 본인이 개설한 통장으로 후원금이 입금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요? 재단 사업본부장인 김모씨는 이에 대해 “재단 내 통장은 일원화됐다”면서 해당 통장의 존재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회계 내역에 이 부분이 반영됐는지는 취재진에게 확인시켜주지 않았습니다.
◇ 아이파일③ : 후원금의 상당액은 현금으로 빠져나갔다
취재진이 확보한 재단 내부 통장들에선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후원금이 입금되는 족족 현금으로 빠져나갔다는 사실입니다. 통상 유사 구호 단체의 사무국은 여러 후원금 전용 통장을 추후 정산, 한 개의 계좌에서 관리합니다. 거기에서 사업비와 운영비를 집행하는 게 일반적이죠. 또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법인통장에서 현금 출금이 잦을 이유가 없습니다. 특히 주된 구호 활동이 아프리카 현지에서 이뤄지는 해당 단체의 사업 성격상 국내 재단 사무국에서 현금 인출이 상시적으로 이뤄졌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법인 자금이 현금으로 출금되면 용처가 불분명해져 훗날 회계 상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사랑재단의 경우는 후원금의 현금 인출이 유독 많습니다. 한 예를 들어보죠. 후원금 통장 잔액이 350여만 원이었는데, 그 즉시 누군가가 하루 차를 두고 2차례에 걸쳐 250만원과 93만원을 재단 통장에서 빼내 버리곤 한 겁니다. 이렇게 빈 통장에는 다시 여러 후원자들이 ‘감사합니다’나 ‘사랑해요’ 등의 입금 메모를 남기고 십시일반 돈을 보냅니다. 그 돈은 또다시 현금으로 인출돼 사라지는 행태가 끝도 없이 되풀이 됩니다. 실제로 2015년 한 해 동안에만 한 개의 통장에서만 5500여만 원의 후원금이 이런 방식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김모 사업본부장도 이렇듯 용처가 불분명한 현금 출금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본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미국에 자택이 있고, 일 년 중 상당 기간을 말라위에 거주하기 때문에 한국 재단 사정을 일일이 챙길 수 없었다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러 재단 전·현직 관계자들의 말은 좀 다릅니다. 한 관계자의 말입니다. “김모씨가 사업본부장이어도 그 사람은, 자신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재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매달 후원금 내역을 김 사업본부장에게 보고했다고 취재진에게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 아이파일④ : 조사 그리고 어쩌면 수사
쿠키뉴스 탐사보도팀은 재단의 여러 의혹과 문제점을 <[단독] “아프리카 도우라는 후원금 어디에…” 외교부 산하 구호 재단, 부실 운영 끝판왕>, <[단독] 본지, 아프리카사랑재단 의혹 보도… 청와대도 심각성 예의주시> 등으로 보도했습니다. 최초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외교부는 보도 이후 해당 재단에 대한 조사에 나섰습니다. 비단 기사 때문이 아니더라도 앞서 아프리카사랑재단은 매년 외교부에 보고하는 서류 제출 미비로 현 재단 이사장에 대한 청문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또한 1월 31일까지 추가 증빙 자료를 제출토록 지시가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보도 이후 외교부 개발협력과는 재단에 ‘회계 장부’, ‘이사회 개최 기록’, ‘회의록’, ‘해외송금내역’ 등을 제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청와대도 움직였습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감사관실과 협의해 작게는 주의·경고를, 크게는 법인 설립 취소가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감사관실 차원의 추가 감사가 이뤄지면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조치를 취할 지는 머지않아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 아이파일⑤ : “구호 활동에 3, 운영비에 7 비율”… 답답·불투명·열정페이
취재를 진행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좋은 일을 하는데 왜 재를 뿌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관련해 여러 취재원들에게 국내 구호 재단의 민낯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후원금 사용 비율이 3대7이라는 건 ‘업계’에서 공공연히 오가는 비밀입니다. ‘3’은 사업비(구호 사업 등)에, ‘7’은 운영비(인건비, 관리비 등)에 쓰인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구호 활동가들은 열정페이로 허덕인다는 사실은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물론 개별 사례들에 불과하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러한 지적에서 자유로운 곳들이 또한 얼마나 될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행’, ‘공익’ 등의 콘셉트로 특정 개인이 조직을 좌지우지하는 ‘사기업’. 아무리 ‘좋은 일’이란 외피를 갖고 있다해도 그 내부가 곪을 대로 곪고 썩을 대로 썩었다면, 이들이 해왔고 또 하려는 모든 일들이 과연 공익의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 인용 보도 시 <쿠키뉴스 탐사보도>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쿠키뉴스에 있습니다.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