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파일] 그 많던 연구비는 누가 가져갔을까?

[아이파일] 그 많던 연구비는 누가 가져갔을까?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연구비 집행 의혹, 소관부처는 나 몰라라

기사승인 2018-02-12 00:06:00

쿠키뉴스 탐사보도팀의 아이파일(I-File : Investigative reporting File)’은 독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거나 알았어도 지나쳤던 일주일 동안의 탐사보도를 풍부한 데이터와 자료, 증언을 더해 쉽고 흥미진진하게 전하는 코너입니다. 기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증언이나 정보를 이곳에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고려했습니다. 매 연재 말미에는 취재기자의 후일담과 주관적인 시각도 집어넣었습니다. 독자들의 응원과 질책, 제보와 참여를 기다립니다.

서울대학교는 학계, 정계, 재계 등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전문가 집단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끈끈한 결합성을 과시합니다. 출신 학교의 중요성은 특히 학계에서 상당한 위력을 떨칩니다. 그중에서도 의료계는 가장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지금부터 전해드릴 이야기는 학계에서 서울대 인맥이 어떤 영향력을 보이는지를 보여주는 극히 일부의자료입니다. 국가 R&D 사업인 정신건강개발사업에서 서울대를 비롯해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기관과 인사들이 어떻게 연구과제비를 수령해 갔는지를 보면, 거미줄처럼 촘촘한 이들의 은밀한 민낯이 드러납니다.

 아이파일: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은 자살, 중독, 성폭력 및 재난·재해에 의한 심리적 외상 등 사회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하여 보건복지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다부처 공동기획 연구개발(R&D) 수행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협약을 체결하고 공식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후략)”

지난 2014년 발족한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의 설립 취지입니다. 정신건강과 관련한 범부처 차원의 연구와 지원은 당시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적 과제로 인식됐습니다. 연구 주관기관이었던 국립정신건강센터는 같은 해 기존의 국립서울병원에서 센터로 상향됐고, 더 많은 역할을 요구받고 있던 차였습니다.

이렇듯 야심차게 문을 연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은 2014년 말부터 정신건강 연구자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초대 사업단장이었던 하모 전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의 진두지휘 하에 사업단은 2014162000만원 2015544000만원 2016582300만원 2017388000만 원 등 4년 동안 여러 연구자들에게 연구과제비를 지원했습니다. 하 전 사업단장은 20166월 퇴임했고, 그 자리는 현 김철응 단장이 이어받았습니다.

흔히 연구자들은 연구 과제 선정을 전쟁에 비유합니다. 연구예산을 지급받기까진 상당히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참신성과 확장성, 사회적 의미 등 본인의 연구 가치를 증명코자 벌이는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는 의혹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소관부처의 관리·감독은 형식적으로 이뤄질 때가 많아, 더러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연구 비리는 빙산의 일각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은 막 신설되기도 했거니와 연구 분야가 정해져 있어 타 연구 사업과 비교하면 주목도는 중심에서 비켜나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아이파일: 촘촘한 인물관계도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은 사업이 시행된 지 4년밖에 되지 않았고, 선진국보다 비교적 늦게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초기 사업단은 기준을 세우는 데 적잖은 고충이 있었으리라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사업단이 발족한 시기는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인 터라 사업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매우 중대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소위 나랏돈으로 진행되는 통상의 연구 사업과 비교해 추진 배경이나 시기에 있어 나름의 특별함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연구 지원 사업이 시작되면, 선정 기준이 확립되지 않아 비교적선정되기 쉽다는 것은 연구자들 사이의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은 어땠을까요? 쿠키뉴스 탐사보도팀의 취재 결과는,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입니다. 이제부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사업단에는 세 개의 조직이 존재합니다. ‘기획위원회’, ‘과제평가단’, ‘운영위원회’. 기획위원회는 연구 분야의 기획을, 과제평가단은 연구 과제 선정을 위한 평가, 운영위원회는 사업 전반의 관리·감독을 맡습니다. 기획위원회는 사업단 내·외부의 전문가 그룹이, 과제평가단은 외부 인사만, 운영위원회는 내·외부 인사가 참여하게 됩니다. <1>은 사업 초기의 기획위원회와 운영위원회 명단입니다.

사업 시행 초반 기획위원회에는 22명의 외부 위원과 13명의 내부 위원이 참여했습니다. 운영위원은 보건복지부 및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소속 인사와 사업단장을 비롯해 외부 전문가가 포함됐습니다. 과제 기획 및 선정, 사업 운영 등 사업 전반에 참여한 인사들이 직접 혹은 본인의 원소속 기관이 연구비를 타게 된 경우 등 연관성을 보이는 위원들의 이름을 붉은 색으로 나타냈습니다.

외부 및 내부 기획 위원들은 각각 20명과 1명에서 연관성이 발견됐습니다. 특히 내부 위원 1명의 위원은 당시 사업단 간부였음이 확인됐습니다. 또한 운영위원 10명도 연관성을 보입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기획 위원들의 역할 때문입니다. 이들은 연구 분야를 정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다시 말하면, 향후 연구 공고가 나가게 될 때, 어떤 분야에서 과제가 선정될지 그 카테고리를 정하는 게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임무를 맡은 위원들이 실제 선정된 연구와 직·간접적인 연관성이 발견됐다는 것은 과제 선정의 공정성에 심각한 결여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사업 운영의 공정성을 가늠해야할 운영위원 상당수에서도 연관성이 발견됐다는 사실은 이 사업이 과연 공정한 절차를 거쳤는지 의문을 갖게 합니다.

아이파일: 20곳 중 13

<2>는 전체 연관성을 나타낸 자료입니다. 연구비 규모 순으로 선정된 연구 기관과 기획위원회 및 운영위원들과의 관계는 놀랍습니다. 2014~20174개년도 동안 진행한 전체 연구 사업에 참여한 기관은 20. 이중 직·간접적인 연관성을 보이는 기관은 13곳에 달했습니다. 제외된 7개의 기관들 중에도 위원들과의 연계성을 보이는 기관이 포함된 곳도 일부 발견됐지만, 공공 데이터를 기준으로 할 때, 직접적인 연관을 찾을 수 없는 곳은 제외했습니다.

연구비 규모 상위 10개 기관 중 9곳에서 연관성을 보였고,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52700만원을 지급받은 삼성서울병원의 연구 책임자들은 외부 기획 위원으로 참여한 홍모 삼성서울병원 교수의 제자들이었고, 홍 교수는 하모 사업단장의 부인이라는 점이 그것입니다.

아이파일: 기획 위원 10명은 연구 책임자로 변신

<표3>은 위원회 인사와의 연관성을 더 간단히 나타낸 자료입니다. 이 중 눈여겨봐야 할 점은 ‘O(본인)’으로 표시된 부분입니다. 2014~2015년 하 전 사업단장 재직 시 기획 위원=연구 책임자8, 하 전 사업단장이 2016년 초 퇴임할 당시 진행된 연구 과제까지 포함하면 총 10명이 발견됩니다.

두 지점에서 문제가 관측됩니다. 일단, 외부 기획 위원들이 연구예산을 수령한 것이 과연 연구 윤리 및 법적으로 적절 하느냐는 겁니다. 취재진이 분석한 자료는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이 공개하고 있는 공공자료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공공데이터를 분석한 결과가 이런데, 당시 관리·감독에 참여한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했느냐는 겁니다.

최초 취재 당시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책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시 책임자와 연락이 닿질 않는다. 본인은 책임자가 아니라 이 사안을 알지 못한다.” 또한 연구 주관기관인 현 국립정신건강센터장도 입장을 밝히는 게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아이파일: 서울대라는 이름으로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이 더욱 확대,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시작으로, 포항 지진, 제천 및 밀양 화재 참사 등 연이어 이어진 재난은 우리 사회에 지우지 못할 상처를 냈습니다. 정신건강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연구지원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첫 걸음입니다.

현재까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의 연구 성과와는 별개로 한 가지, ‘공정성의 부재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사업의 효용성은 계속 의문시될 겁니다. ‘끼리끼리나눠 갖는 연구예산은 참신한 연구 발탁의 걸림돌이자, 타 연구자들의 좌절과 분노, 불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당시 책임자가 아니라 모르겠다는 식의 소관 부처의 변명무책임이 계속되는 한 이 사업은 계속 절뚝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 끼워진 단추는 처음부터 다시 끼워야 합니다. 해당 사안의 고강도의 감사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나랏돈이 서울대 인맥에 의해 쪼개져 집행된 것을 하게 넘길 국민은 많지 않습니다.

인용 보도 시 <쿠키뉴스 탐사보도>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쿠키뉴스에 있습니다. 제보를 기다립니다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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