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민희(27·가명)씨는 1년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암검진을 받는다. 췌장암 가족력 때문이다. 김씨의 어머니는 40대 젊은 나이에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도 위암 병력이 있다. 김씨는 우연히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소화기관이 약하고, 가족력이 있어 정기검진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21살 이후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고 있다. 김씨는 "어머니와 같은 병을 앓게 될까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내심 두렵기도 해서 꼬박 꼬박 검사를 받고 있다"며 “매번 소화 안 되는 고기류, 튀김류는 먹지 말라고 하시는데 밖에서 사먹는 일이 많아 지키기가 쉽진 않다”고 말했다.
암은 가족력과도 관계가 깊다. 가족력’이란 본인을 중심으로 3대 직계가족 또는 사촌 이내에 걸쳐 병력을 확인했을 때 2명 이상 같은 질병에 걸렸거나 어떤 질병이 집중적으로 발병할 경우를 말한다. ‘유전’이 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가 확인된 한정적인 경우만을 이른다면, 가족력은 유전을 포함해 사고방식, 생활습관, 주거환경 등 가족이 공유하는 후천적 요인을 포괄한다,
암종류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부모가 암환자일 경우 자녀가 암에 걸릴 가능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높다. 일례로 어머니나 자매에게 유방암이 있다면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은 약 2~3배 높아진다. 대장암의 경우에도 전체 대장암 환자의 20%가 유전적 소인을 포함한 가족력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된다.
최근 건강검진이 보편화되고, 질병예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선대에서 이어진 암질환의 대(代)를 끊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가족력은 대체로 암환자의 자녀를 대상으로 질병 가계도를 그려 확인한다. 이때 가족 및 친적들의 병력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도움이 된다.
이선영 이대목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부모, 형제, 친척 등 가계 내에 어떤 질병에 언제 발병했고, 사망 시기는 언제인지 확인한다. 병에 따라 유전적 성향이 두드려진 경우에는 많이 나타날 수도 있고, 세대를 건너뛰고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정보가 많은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다만, 암의 종류와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가족력의 판단 기준은 각각 다를 수 있다. 췌장암의 경우 직계 가족 중 한 명에게만 발생했더라도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 매 세대마다 췌장암이 나타나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췌장암은 주로 60대 후반 이후에 발병하기 때문에 이른 나이부터 검진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다만, 가족 중 40세 이전에 발병한 사례가 있다면 김씨와 같이 젊더라도 검진 등에 신경을 써야 한다.
가족력이 있는 것이 오히려 병에 걸릴 위험성을 낮추기도 한다. 국립암센터 위암센터 최일주 박사 연구팀이 2001년부터 5년간 위암 환자 1273명의 수술 후 예후를 관찰한 결과, 위암 직계 가족력이 있는 환자에서 가족력이 없는 환자에 비해 위암 재발 및 사망 확률이 5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연구팀은 직계가족에서 발생하는 위암의 특성과 흡연자 비율이 낮은 점이 예후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족력이 정기적인 건강검진, 생활습관 개선 등 개인의 의지를 강화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도록 돕기도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암발병 원인 중 유전적 소인은 약 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95%는 생활환경 등 복합적인 요소로 비롯된다. 즉,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선영 교수는 “암치료에서 중요한 것이 조기발견인데 가족력을 인지하고 있는 분들은 꾸준히 건강을 체크하기 때문에 특정 질병이 아니더라도 다른 질병에도 조기발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가족력이 있다고 해서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오히려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 소식하는 식습관, 꾸준한 운동 등 바람직한 생활습관만 지킨다면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