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강제실험 막은 계약직 직원의 용기

임산부 강제실험 막은 계약직 직원의 용기

“서울대병원 ‘명의’, 정신과 환자 인권·고통 아랑곳 안했다”

기사승인 2018-03-14 00:08:00

지난 8일 본지의 임산부 강제 실험 시도한 서울대병원 의사단독 보도 이후 파문이 커지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유성엽 위원장은 서울대병원 측에 해당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의 실험 동의서 일체를 국회에 출석해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측은 해당 제약사와의 협의 등을 이유로 버티고 있는 상태. 유성엽 위원장실 관계자는 서울대병원이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있으며 향후 보건복지위원회와 함께 해당 사안을 다룰 것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쿠키뉴스 탐사보도팀에는 기사를 접한 여러 독자들로부터 제보자의 용기를 응원한다는 이메일이 쇄도했다. 취재진에게 용기를 내 당시 상황을 진술한 제보자는 심신미약 상태의 임산부 환자가 임상시험에 동원되는 것을 막은 계약직 연구원이었고, 이 일로 인해 실직하는 어려움을 겪었었다. 이에 취재진은 앞선 기사에 담지 않은 제보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일부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의 경우, 본래의 의도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수정했다.

[쿠키뉴스 탐사보도] 저는 H교수가 분당서울대병원에 재직 시 연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으며, 교수님이 환자나 아래 직원에 대한 부적절하게 행동한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어서 오래된 일이지만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H교수가 명의로 TV에 소개될 때 무고한 환자들이 속을까봐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이전에 정신과에서 일한 사람으로서 이런 문제는 꼭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제약사의 제3상 임상시험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약은 정신분열병, 정신병적 양상이 수반되거나 수반되지 않은 양극성 장애와 관련된 급성 조증 혹은 혼재 삽화(episode)에 사용되는 약입니다. 환자 선정기준상 양극성 장애 1 또는 2가 있는 분을 연구에 포함시켜야 했습니다.

어떤 연구든 상관없이 임상 시험 전에 환자에게 연구 동의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연구 동의를 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자기 의사 결정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환자는) 임상시험에 불이익과 이득을 모두 이해하고 참여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신체·정신의 판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가 되었던 환자는 임신 중이었고, 양극성 장애 1로 급성 조증이 있었습니다. 제가 동의서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서 환자 분과 대면하였을 때 환자의 상태가 정상적인 대화나 판단이 불가능한 사항이어서 동의서에 본인의 성명조차 제대로 쓰기가 힘든 상항이었습니다. 연구 선정기준에 위배되고 어느 의료인이 봐도 연구에 참여할 동의능력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환자가 임신한 경우 정신과 약이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줄이거나 약을 잠시 중단하거나 매우 조심해서 씁니다. 정신과 약 자체가 태아에 선천성 기형을 초래하는 독성이 있을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연구에 참여하게 되어 시험약 또는 위약에 무작위로 배정되면, 현재 급성 조증인 환자의 상태도 나빠지고 태아도 어떤 부작용을 받지 모르는 일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이런 환자를 임상 시험에 등록 시키는 것은 제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가능한 많은 환자를 연구에 빨리 등록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암묵적으로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H교수는 제게 동의서에 환자를 대신해 환자 이름을 가짜로 서명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병원 외래 복도에서 말입니다. 양심상 그럴 수 없었고 H교수의 판단에 이 환자를 꼭 임상시험에 포함시켜야 한다면 H교수가 직접 환자 가족을 설득시키고, 환자에게도 직접 이야기해서 동의서를 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H교수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H교수는 다른 직원과 외래에 있는 환자가 보는 외래 복도 앞에서 욕설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당시 제 자신이 느낀 모욕감과 당혹감보다 TV에서 명의라고 소개되는 H교수가 정신과 환자의 인권이나 고통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성공, 업적, 돈만 생각한다는 사실에 큰 실망을 느꼈습니다.(후략)

(이후의 이메일 내용 중에서) 지금도 환자의 인권 측면, 연구자의 윤리적 의무를 생각할 때 H교수의 행동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환자를 지키고 싶었다

실직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임상시험 동의서 조작을 거부, 환자를 지키고자 한 계약직 연구원의 용기는 인간존중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케한다. 그는 말한다.

환자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도저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을 해 아이를 지키고자 먹던 약까지 끊은 환자인데, 연구로 인해 산모나 태아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 비윤리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무엇을 위해 환자를 연구에 동원하려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H교수는 국내 정신의학 분야의 권위자다. 때문에 그런 그가 지난 2007년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에서 진행한 임상시험 3상 연구에서 임산부 환자를 연구에 동원코자 연구원에게 환자 동의서를 조작토록 지시했다는 앞선 폭로에 상당수의 독자들은 소름이 끼친다는 반응을 보였다.

취재진은 반론권 보장을 위해 H교수로부터 수차례 입장 표명을 요구했지만, 그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쿠키뉴스 탐사보도팀은 H교수와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의 적극적인 반론을 기다리며 이를 가감 없이 기사에 반영할 예정이다.

인용 보도 시 <쿠키뉴스 탐사보도>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쿠키뉴스에 있습니다. 제보를 기다립니다. 탐사보도팀의 추적 취재는 카카오 스토리펀딩 '하얀 거탑의 하얀부역자들' 연재를 통해서도 소개됩니다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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