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동네 사람들은 더 오래 아프고, 수명도 짧았다.
한국건강형평성학회는 지난 26일 오후 ‘지방자치시대의 건강불평등’을 주제로 국회토론회를 열고, ‘17개 광역시·도 및 시·군·구별 건강불평등 현황’을 발표했다.
학회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소득 하위 20%집단은 소득 상위 20%보다 기대수명은 6.6년, 건강하게 사는 기간(건강수명)은 11.3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소득이 낮을수록 건강과 거리가 멀고, 수명도 짧다는 것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국민의 수명은 꾸준히 상승했다. 국민 평균 기대수명은 2004년 기준 78.1세였던 것이 2015년에 82.5세로 증가했다. 또 건강수명의 경우 2008년 기준 평균 65세에서 2015년에는 67.1세로 올랐다. 다만, 소득이 낮은 집단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더디게 증가했다.
이 같은 격차는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서도 확인됐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기대수명이 가장 높은 곳은 서울특별시, 가장 낮은 지역은 전라남도로 각각 83.3세, 80.7세로 나타났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집단 간 기대수명 격차는 강원도와 전라남도가 7.6년으로 가장 크게 벌어졌다.
건강수명은 기대수명보다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났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건강수명이 가장 높은 곳은 서울특별시가 69.7세로 가장 높았고, 경상남도가 64.3세로 가장 낮았다. 전국 광역시·도별로는 전라남도에서 소득수준 간 건강수명 격차가 13.1년으로 가장 크게 나타났고, 인천광역시가 9.6년으로 가장 작았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간 차이, 즉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사는 기간이 가장 긴 시·군·구는 경상남도 남해군(18.6년), 경상남도 하동군(18.6년), 전라북도 고창군(18.4년) 순이었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가장 작은 지역은 성남시 분당구(9.5년), 경상북도 성주군(10년), 서울특별시 서초구(10.1)년 등이었다.
해당 내용을 발표한 박진욱 계명대 교수는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건강수명에서의 불평등 현황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향후 각 광역시도 및 기초자치단체 수준에서 지역의 건강 수준 향상과 건강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며 의의를 밝혔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건강불평등은 과연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이날 토론회에서 시민사회, 정책 전문가들은 건강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다만 해결방안에 있어서는 모호한 ‘희망론’과 ‘회의론’이 번갈아 나왔다.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건강불평등 격차는 짧은 기간 동안 급격히 벌어졌다. 오랜 기간에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짧은 시간 내에 정책적 중재를 통해 바꿀 수 있다는 것”이라며 “건강불평등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시민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행사하고, 보건·사회서비스의 직접 공급자인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자체 선출직 공직자들이 정책을 대할 때 건강 개념을 가지고 접근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오춘희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정책실장은 ‘건강불평등’에 대한 접근법을 달리 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건강불평등 개념의 모호성도 지적됐다.
오 실장은 “건강불평등 문제에서 주로 취약계층, 의료소외계층에 대한 정책과 사업이 먼저 고려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에 의문이 든다”이라며 “이미 발생한 만성질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보다는 발생하기 전 단계의 보편적 건강관리가 더 중요하다. 취약계층, 의료소외계층을 넘어 각 개인들이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민성 사회복지연대 사무처장은 “건강불평등 문제를 정책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건강불평등을 단순히 소득계층간 문제에 한정짓지 말고 전체 시민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이를테면 ‘장애인 치과’가 아니라 ‘치과적 장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장애인을 위한 치과보다는 누구라도 치과적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보다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아직 우리사회의 ‘건강’에 대한 인식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우리 사회에서 건강문제는 행정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지자체장의 의지가 박약하고, 건강불평등 등 지역민의 건강문제를 지방행정의 우선순위로 끌어올릴 보건행정의 역량이 취약한 상태“라며 ”건강불평등 해소를 위해 국가차원의 정책도 우선순위가 아닌 상황에서 지역차원의 대응은 한계가 있다“며 회의론을 냈다.
김종명 정의당 건강정치위원장도 “우리사회가 건강불평등을 얼마나 중요한과제로 인식하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라며 의견을 같이했다. 김 위원장은 “건강불평등은 사회적 결정요인에서 나타나므로 경제, 사회정책, 정치의 중요성이 크다. 그러나 아직까지 건강불평등 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할 문제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부족하고, 이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력도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장경수 여의도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건강불평등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식적인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장 연구원은 “건강불평등이 정부의 정책의제로 채택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불평등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부족”이라며 “객관적 지표개발 등을 통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명확한 정책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