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국내 중소병원들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 내 의료정보의 가치와 활용도를 높이고자 전자의무기록시스템(EMR)인증제와 의료기관간 진료정보를 통합·연계하는 진료정보교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EMR의 경우 병원별로 사용하는 시스템이 제각각인 탓에 환자중심 의료시스템 구축이나 병원 간 정보교류 등에 걸림돌로 지목돼왔다. 이에 복지부는 의료기관에서 개별적으로 운영 중인 EMR에 대해 국가적 인증기준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중소병원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의료정보화’ 추세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12일 서울드래곤시티 아코르-앰버서더 서울 용산 콤플렉스에서 열린 2018 KHC(Korea Healthcare Congress)에서 진행된 ‘병원 정보화의 미래’ 포럼에서 허준 명지성모병원장은 “4차산업혁명시대에 의료정보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중소병원 입장에서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날 중소병원을 대표해 발언대에 나선 허 병원장은 “새로운 EMR을 도입할 여유가 없고, 도입한 후 유지보수까지 생각하면 병원의 경영손익을 따져봤을 때 너무 비싸다. 정부지원이 있다고 해도 얼마나 될지 모르는 일”이라며 “또 병원 간 진료정보 교류가 활성화되기 위해 표준화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때까지 사용하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표준으로 진료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모든 병원의 EMR이 통합돼 정보교류가 활성화되면 그렇지 않아도 심한 대학병원 쏠림을 가속화할 수 있다. 중소병원들은 어쩔 수 없이 치료가 아닌 검사위주로 운영되고, 중소병원들끼리의 검진 가격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의료의 질은 떨어지고, 악용하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정용 대한병원협회장도 “중소병원은 EMR에 투자할 여유가 없다”며 의견을 더했다, 홍 회장은 “병원에게 부담을 지울 것이 아니라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대학병원들이 각자 개발한 비용을 모두 합치면 1조 이상일 것이다. 관리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 부담을 중소병원은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강성홍 대한의무기록협회장은 “가이드라인에 맞춘 EMR 오픈소스를 정부가 개발해 병원에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 회장은 “정보가 자산인 시대를 맞아서 병원정보를 잘 관리하는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의 질적 수준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저소득층이나 지역주민들의 건강 형평성 문제와 맞물려있다”며 “따라서 국가가 오픈소스 EMR을 개발하고, 이를 병원이 그대로 쓰거나 보완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종덕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 사무관은 “복지부는 전자의무기록(EMR) 인증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각각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올해 하반기 시범사업을 거쳐 2019년도에는 인증기준을 제시할 예정”이라며 “국내 EMR이 갖춰야할 최소한의 요소들을 제시할 예정이다. 의료기관간 상호교류가 가능한 체계를 만들고자 추진 중이다”라고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